[진경호 칼럼] 1등만 사는 세상, 선거라도 바꾸자

[진경호 칼럼] 1등만 사는 세상, 선거라도 바꾸자

진경호 기자
진경호 기자
입력 2024-04-24 00:41
수정 2024-04-24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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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임기 중반 野에 “대연정”
둘로 나뉜 나라서 누구든 ‘불통령’
승자독식 소선거구제가 분열 재촉
尹·李 회담, 선거제도 개혁 논의를

돌이켜봐도 노무현 전 대통령은 참 그악했다. 취임 석 달 만에 “대통령 못 해먹겠다”고 해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더니 임기 중반을 맞아서는 기어코 ‘여야 대연정’과 ‘소선거구제 폐지’ 제안으로 정치판을 뒤흔들었다. 2005년 7월 대통령 된 지 2년 반이 돼 가던 때 일이다.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그해 4월 재보궐선거로 과반 의석을 잃으면서 사사건건 야당인 한나라당과 언론 등에 발목이 잡혔다. 그의 거친 언행에 민심도 곱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연정 카드를 질렀다. 그것도 한나라당이 주도하고 열린우리당이 참여하는, 그러니까 사실상 정권을 내주겠다는.

이게 말이 되냐고? 그의 말을 조금 더 듣자. “책임정치를 하는 나라에서 29% 지지도를 갖고 국정을 계속 운영하는 게 과연 옳은지 국민적 토론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2005년 8월 26일, KBS ‘참여정부 2년 6개월, 대통령에게 듣는다’) 나를 대통령에 앉혀 놓고 지지하지 않는다면 대통령 더 할 생각 없다! 속내가 무엇이든 국정에 있어서 무한책임을 진 대통령이라면 결코 해선 안 될 말. 욕 먹어 마땅했다. 다만 한 가지, 그 발언에 녹아 있는 심경만큼은 헤아려지는 구석이 없지 않다. 대통령도 어쩌지 못하는 거대한 정치의 벽. 그 앞에서의 무력감.

후임들은 어땠나.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구속되고 탄핵되고 정권 내주고 등등의 질곡을 넘어 아주 치명적인 공통점이 있다. 모두 ‘불통’ 소리를 들었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도 다르지 않다. 노무현부터 20년, 우리는 죄다 ‘불통령’들만 뽑았다.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우리 국민이 속은 걸까. 그것도 다섯 번이나 연속으로? 우린 정말 바보들인가.

1등만 살아남는, 승자 독식의 정치 구조를 바꿀 때가 됐다. 우린 속은 게 아니고, 이들 또한 결코 사기꾼이 아니다. 오직 승자만이 살아남는 정치 문화가 배양한 배격과 증오, 그리고 이런 정치 문화를 구축하는 정치 구조와 선거 체제의 산물들일 뿐이다. 어떤 현자(賢者)도 이런 날 선 구조에선 독선과 오만, 불통의 굴레를 벗지 못한다.

앞서처럼 22대 총선 결과 또한 비틀린 선거제도의 증거다. 지역구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161석을 얻고 국민의힘이 90석에 그쳤으나 막상 두 당의 득표율 차이는 5.4% 포인트에 불과하다. 민주당이 50.5%, 국민의힘이 45.1%를 얻었다. 유권자를 엇비슷 나눠 가졌건만 의석 차는 71석, 1.8배에 이른다. 1명만 당선되고, 단 1표가 부족해도 떨어지는 소선거구제의 특질 때문이다. 4년 전 21대 총선에서도 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의 지역구 득표율 차이는 8.4% 포인트였지만 의석수는 163석과 84석, 2배 차를 보였다.

낙선 후보를 찍은 ‘사표’(死票)가 2004년 17대 총선 이후 지금껏 40~50%를 넘나든다는 것, 유권자 절반 가까이가 대선, 총선, 지방선거 등 2, 3년의 투표 때마다 낙담하고 분노한다는 건 심각한 일이다.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이런 정치적 박탈감은 손쉽게 상대 당과 후보, 지지자에 대한 적대감으로 치환된다. 각 당과 후보는 어떤가. 1표라도 이기면 전부를 갖는 승자독식 제로섬게임에서 물러설 곳은 없다. 양보? 타협? 어림없다. 내가 살려면 상대에 대한 증오와 불신을 쉼 없이 키워야 한다. 정치가 정치다울 공간은 없다.

윤 대통령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조만간 만난다. 참패와 대승이 버거워 만든 자리. 그러나 승자독식 정치에서 정적(政敵)의 협력은 난센스다. 달라는 건 많은데 줄 건 별반 없으니 협치(協治)라 쓰고 대치(對峙)라 읽어야 할 공산이 크다.

자잘한 의제 놓고 샅바싸움할 때가 아니다. 대권과 의회 권력을 거머쥔 이들이라면 정치를 논해야 한다. 국민을 둘로 갈라 싸우게 만드는 지금의 선거제도부터라도 뜯어고칠 발판을 만들길 바란다. 내 코가 석 자든, 배 부르고 등 따뜻하든 그래야 지도자다. 그게 민생이다.

진경호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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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경호 논설실장
진경호 논설실장
2024-04-24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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