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정의 독사만평] 한일 정상, 이제 포항에서 축배를/서울시립대학교 명예교수

[정재정의 독사만평] 한일 정상, 이제 포항에서 축배를/서울시립대학교 명예교수

입력 2023-06-01 02:36
수정 2023-06-01 0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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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자본, 기술, 노하우로
50년 전 포항제철 첫 ‘쇳물’
한일 교류협력의 성공 모델
성취의 역사 계승하는 화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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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정 서울시립대학교 명예교수
정재정 서울시립대학교 명예교수
히로시마 7개국 정상회의에 참가한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달 21일 평화기념공원의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를 함께 참배했다. 늦게나마 원통하게 목숨을 잃은 3만여 희생자의 넋을 기리고 2만여 피해자의 고초를 위로한 뜻깊은 행사였다. 한국인 원폭 피해자 10여명은 양국 정상의 참배를 지켜보며 감회 어린 표정을 지었다. 윤 대통령의 선도적 노력과 기시다 총리의 적극적 호응으로 한일 관계가 급속히 개선됐기에 일어난 획기적 사건이었다.

필자는 역사의 상처를 치유하려는 양국 정상의 이런 노력이 제암리 3·1운동 순국기념관 참배 등으로 이어지면 한일의 화해도 실현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적대 국가 사이의 역사 화해는 일직선으로 단번에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정상뿐만 아니라 국민끼리도 두터운 신뢰와 존중을 쌓아야 가능하다. 따라서 역사 화해의 추진에는 국민감정까지 고려한 신중하고 참신한 기획·연출이 필요하다.

아베 정부의 장기 집권 이후 일본의 정부·여당은 역사문제에 관해 한국에 사죄·반성을 표명하기 싫어한다. 이처럼 역사 화해에 피로를 느끼는 상황에서는 양국 정상이 곧바로 제암리를 참배하기보다는 여론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우회 조치를 먼저 취하는 게 좋다. 그 방법의 하나로 필자는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가 올해 안에 포항제철에 들러 교류·협력의 성과를 함께 경축할 것을 제안한다.

지금부터 50년 전인 1973년 6월 9일 포항제철은 온 국민의 주시 아래 첫 쇳물을 토해냈다. 철강입국을 염원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집념과 이를 현장에서 추진한 박태준 전 사장의 돌격이 1차 목표를 달성한 감격의 순간이었다. 일본은 여기에 자본과 기술 그리고 노하우를 제공했다.

한국과 일본은 1969년 12월 청구권 자금과 수출입은행 융자 등 1억 6000만 달러를 투입해 첫해 103만t의 철강을 생산한다는 기본합의서를 체결했다. 포항제철은 일본으로부터 물심양면의 지원을 받아 1973년에 1기 계획을 초과 달성했다. 그리고 곧바로 2기 건설에 착공해 1978년 550만t, 1983년 910만t을 생산했다. 포항제철은 축적한 독자 역량을 바탕으로 광양제철도 건설해 1987년 270만t, 1990년 810만t, 1999년 1291만t을 생산했다. 포항제철과 광양제철의 합계 생산량은 1999년 2391만t으로 일본을 제치고 세계 최고 수준에 올랐다.

일본의 철강업계는 포항제철의 비전·의지·노력에 감응해 설계·건설·구매·연수 등에서 지원과 협력을 아끼지 않았다. 포항제철은 일본 철강업을 벤치마킹하며 쉴 새 없이 모방·증산·확장·자립의 길을 달려 50년 만에 일본과의 수직적 분업에서 수평적 분업으로, 비대칭적 관계에서 대칭적 관계로 변신했다. 포항제철의 도약은 한국이 일본과 균등·균질의 국력·위상을 축적하는 과정과 일치했다.

포항제철은 한국과 일본의 교류·협력이 서로에게 이익이 된다는 점을 실적을 통해 증명한 최상의 성공 사례다. 그런데도 양국의 다수 국민은 국교 정상화 이후 한일 관계를 부정·퇴영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그리하여 친일 몰이와 반일 선동에 쉽게 휩쓸린다. 포항제철의 쇳물 출토 50년을 맞아 양국 정상이 함께 축배를 들면 한일 관계에 대한 국민의 역사인식은 긍정·진취의 방향으로 크게 바뀔 것이다. 그러면 한일은 급속히 역사 화해의 물살을 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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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의 역사 화해는 함께 갈고 닦으며 성취한 역사를 존중하고 계승하는 가운데 이루어진다. 건전한 역사인식의 수립에는 남다른 용기와 결단 및 실천이 필요하다. 한국과 일본이 50년 전 포항제철에 함께 불을 지폈듯 양국 정상이 포항제철에서 함께 축배를 들어 역사 화해에 불을 댕기기 바란다. 역사는 두 정상의 공적을 길이 기억할 것이다.
2023-06-01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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