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균미 칼럼] 정치의 품격/논설고문

[김균미 칼럼] 정치의 품격/논설고문

김균미 기자
입력 2023-02-10 01:55
수정 2023-02-10 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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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정치 양극화 심화하지만
대통령 수시로 초당적 협력 강조
제스처라도 희망 갖게 해
한국 여야, 뭘 믿고 시늉조차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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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균미 논설고문
김균미 논설고문
“미국의 서사는 진보와 회복력에 관한 것이다.” “공화당 동료(friends) 여러분, 지난 2년간 양당이 함께 일해 왔고, 앞으로도 협치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함께 일을 마무리하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8일(현지시간)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한 국정연설 중 인상적인 대목들이다. 지난해 중간선거에서 상원은 수성했지만 하원의 다수당 지위가 공화당으로 넘어간 뒤 바이든의 첫 국정연설이어서 관심이 집중됐다. 그는 집권 하반기 공화당에 초당적 협력을 강조하는 동시에 재선 도전을 겨냥해 개혁 과제들의 한 치 양보 없는 이행도 다짐했다. 서로 상충하고 대선을 앞두고 있어 양당 협력 가능성은 높지 않다. 하지만 갈라진 정치 지형에서 대통령이 초당적 협치를 강조한 것이 레토릭에 그치더라도 제 갈 길만 고집하는 것보다는 낫다.

평일 저녁 황금시간대에 70여분간 생중계된 바이든의 국정연설을 보고 여러 생각이 들었다. 첫째, 정치 연륜 50년인 바이든의 노련함이다. 연방 상원의원 36년과 부통령 8년. 의회 정치엔 최고수다. 어렵게 하원의장에 선출된 케빈 매카시 공화당 의원의 취임을 축하하며 분위기를 띄웠다. 2년간 거둔 경제적 성과가 공화당 협조로 가능했다고 강조해 드물게 공화당 의원들로부터 박수도 받았다. 의료보험 개혁 등을 겨냥해 쏟아지는 공화당 의원들의 야유와 고함은 예상한 듯 즉석에서 침착하고도 날카롭게 받아쳤다.

미 언론과 정치전문가들은 이번 국정연설이 내용과 열정적인 모습 등에서 바이든이 대통령으로 한 연설 중 가장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했다. 어눌하고 말실수도 했지만 80세라는 고령에 대한 우려를 날려 버릴 정도로 활력 넘치고 단호했다.

둘째, 바이든의 대외정책과 경제정책의 핵심이 미국 우선주의라는 점을 재확인했다. 반도체 등의 공급망 구축 외에 미국의 모든 연방 기반시설 공사에 미국에서 만든 자재만 쓰도록 요구하는 새 기준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했다.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때처럼 낭패를 보지 않으려면 한국 정부는 철저하게 대비해야 한다.

셋째, 바이든이 강조한 초당적 협력이 말처럼 쉽지는 않아 보인다. 대선 승리를 위해 공화당이 각을 세울 게 뻔하다.

예의를 지켜 달라는 매카시 하원의장의 사전 당부에도 의원들이 야유하는 모습은 영국 의회를 연상시키지만 아직 미국 의회에서는 드물다. 대통령 국정연설을 거부한 적도 없다. 국정연설이 의회·국민과의 주요 소통 수단이기 때문이다.

미국 대통령의 국정연설은 1790년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 때 시작됐다. 1801년부터 의회에 서면 제출로 대체됐다가 1913년 우드로 윌슨 대통령 때 연설로 바뀌었다. 1947년 해리 트루먼 대통령 때부터 TV로 중계됐다. 1965년 저녁 시간대로 옮겨 더 많은 사람이 대통령 연설을 직접 들을 수 있도록 했고, 그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 정치의 양극화는 한국보다 결코 덜하지 않다. 2년 전 대선에 불복하는 극우 단체 회원들이 의회에 난입하는 초유의 사건까지 터졌다. 지난 2일에도 반유대 발언을 했다며 소말리아 출신 민주당 하원의원이 외교위원회에서 제명됐다.

그렇다고 여야 소통 채널이 막히지는 않았다. 바이든은 지난 1일 매카시 하원의장을 백악관으로 초청해 국정 운영의 협조를 요청했다. 주요 현안에 대한 입장차는 여전했지만 국정연설에서 재차 초당적 협력을 강조하며 손을 내밀었다. 제스처인 줄 알면서도 사람들은 협치에 대한 실낱같은 희망을 갖는다. 이것이 정치가 갖춰야 할 최소한의 품격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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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떤가. 여야가 협치 시도는 고사하고 시늉조차 하지 않는다. 정치의 품격을 따지기도 부끄럽다. 이참에 대통령의 국회연설을 미국처럼 더 많은 사람이 볼 수 있게 평일 저녁으로 옮기는 것도 생각해 볼 만하다.
2023-02-1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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