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찰스와 밀턴/우석대 명예교수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찰스와 밀턴/우석대 명예교수

입력 2022-09-27 20:24
수정 2022-09-28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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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2021. 저녁 하늘도 때로는 품격이 있다.
대전 2021. 저녁 하늘도 때로는 품격이 있다.
찰스 3세가 영국 왕으로 즉위했다. 같은 이름으로 400년 전 영국을 통치했던 찰스 1세와 찰스 2세를 떠올린다. 두 사람 모두 시인 존 밀턴(1608~74)과 인연이 깊다. 찰스 1세는 독재 권력을 휘두르다가 의회군에 패해 재판을 받고 1649년 1월 참수형을 당한다. 그러나 비록 폭군일지언정 사형장에서 국왕다운 품격을 잃지 않아 구경꾼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신민이 국왕을 처형한다는 걸 상상하기 힘든 절대왕정 시대였다. 프랑스 등 유럽 군주국에서 반발 여론이 들끓었다. 이를 잠재우기 위해 공화국의 대의를 설득하는 여론전을 펼칠 필요가 있었다. 혁명정부를 대변해 군주제의 해악과 공화제의 정당성을 전 유럽을 상대로 선포하는 임무를 맡은 인물이 밀턴이다. 혁명정부의 외교부 장관직을 맡고 있던 그는 1650년 국가대표 단일 논객으로 국제무대에 섰다.

밀턴은 녹내장으로 1644년부터 왼쪽 눈 시력을 서서히 잃었고, 공화국 논객을 맡으라는 명을 받았을 때는 남은 오른쪽 눈도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았다. 의사들은 밀턴이 그 막중한 임무를 맡으면 스트레스로 두 눈의 시력을 완전히 잃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밀턴은 자신의 소명으로 여기고 임무를 떠맡았고, 그 결과 1652년 두 눈의 시력을 완전히 상실한다.

1649년에 시작한 공화정은 프랑스로 망명한 찰스 2세(사형당한 찰스 1세의 장남)가 복귀하면서 1660년 끝났다. 11년간의 공화정 실험은 끝났다. 세상은 뒤집혔다. 앞 못 보는 혁명가 밀턴은 은둔한 채 ‘실낙원’ 등 서사시 집필에 전념한다. 1663년 어느 날 밀턴 집에 뜻밖의 손님이 찾아온다. 사형당한 찰스 1세의 둘째 아들이며, 찰스 2세의 동생이자 왕위 계승권자인 제임스 2세였다. 부왕 처형을 정당화해 전 유럽에 필명을 떨친 공화주의자 밀턴이 얼마나 미웠을까. 그는 장애인 밀턴을 한껏 조롱했다. 하지만 왕세제 앞에서도 밀턴은 꼿꼿한 기개를 잃지 않았다.

불쾌해진 제임스 2세는 왕궁에 돌아가 밀턴을 교수형시키지 않은 건 큰 실수라고 투덜댔다. 그러나 찰스 2세는 늙고 가난한 장애인을 뭐하러 죽이느냐고 타이른다. 정치보복을 삼가는 절제와 품위다. 결과적으로 찰스 2세의 품격이 ‘영문학의 보석’을 살렸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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