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정의 독사만평] 서울의 평양학, 남북 교류 디딤돌로 삼아야/서울시립대학교 명예교수

[정재정의 독사만평] 서울의 평양학, 남북 교류 디딤돌로 삼아야/서울시립대학교 명예교수

입력 2022-09-14 22:06
수정 2022-09-15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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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이전의 평양 자료 南에 편중
평양학 총서 발간, 北 참여 기대
의심·반발 큰 ‘담대한 구상’보다
남북 공동연구라는 ‘작은 시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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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정 서울시립대학교 명예교수
정재정 서울시립대학교 명예교수
남북 관계가 다시 험악해졌다. 윤석열 대통령의 ‘담대한 구상’ 발표에 북한이 정면으로 반발했다. ‘담대한 구상’은 북한이 핵 개발을 중단하고 실질적 비핵화를 시작하면 그 단계에 맞춰 대규모 식량 공급뿐만 아니라 기간산업과 의료체계 등의 현대화를 지원하겠다는 내용이다. 곧 북한이 비핵화한 후에 보상하는 게 아니라, 비핵화로 나가는 정도에 따라 국가 개조 수준으로 돕겠다는 통 큰 제안이다.

북한의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담대한 구상’을 실현 가능성이 전혀 없는 데다 북한의 국체인 핵을 경제협력과 바꾸어 보겠다는 어리석은 발상이라고 일축했다. 아울러 대통령 직함조차 떼버린 채 윤석열 인간 자체가 싫으니 서로 의식하지 않고 살기 바란다는 식으로 매몰차게 반격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한술 더 떠 핵 포기는커녕 핵 개발을 확대하겠다고 선언했다. 나아가 핵 사용을 법제화하고, 핵을 선제타격에 활용하겠다는 의지를 노골적으로 표명했다.

남북 정상이 짝짜꿍하며 평화놀음을 벌인 지 2년도 안 돼 한반도는 벌써 살벌한 냉기에 휩싸였다. 암울하고 불안한 노릇이다. 남북 관계가 이처럼 경색된 가운데 서울시립대 서울학연구소 평양학연구센터는 첫 성과로 평양에 관한 3권의 총서를 출간했다. 어둠 속의 실낱같은 불빛이었다. 작지만 소중한 시작이다. 부질없는 바람이지만 꽉 막힌 남북 대화를 재개하는 데 불쏘시개로 썼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료총서 ‘평양의 옛 지도’는 역사적 가치가 높은 평양지도 65점을 수록했다. 이는 국내에서 북한 도시를 특정해 만든 최초의 옛 지도책으로, 평양의 자연환경, 공간배치, 행정조직, 생활모습 등을 이해하는 데 기초자료로 이용할 수 있다. 연구총서 ‘모방할 수 없는 역사’는 동서독의 문화·학술 교류를 현장 경험자의 시각에서 정리해 동서독을 모방하고 싶은 우리의 충동에 교훈을 준다. 주로 40대 연구자들이 집필한 교양총서 ‘평양오디세이’는 오늘날 평양의 공간, 경제, 문화를 거리, 건축, 시장, 부동산, 문화재, 소비 등에 초점을 맞춰 분석했다.

서울 정도(定都) 600년을 기념해 출범한 서울학연구소는 30년 동안 세계 굴지의 지역학연구소로 발전했다. 이를 본떠 국내에서는 인천학·호남학 연구소, 국외에서는 베이징학·도쿄학 연구소 등이 발족했다. 공동연구와 학술 교류도 활발하다. 서울학연구소가 그동안 축적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평양학 연구를 시작한 의미는 각별하다. 남북한의 역사·문화를 이끌어 온 두 핵심 지역을 함께 연구함으로써 한 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정립하고 통일의 기반을 구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대 이전 평양에 관한 자료는 압도적으로 남한에 편재돼 있다. 서울학의 이론과 방법을 원용해 국내외에 흩어진 평양 관련 자료를 탐사·정리·연구하면 북한에도 큰 도움이 된다. 평양은 북한이 ‘사회주의 혁명의 심장’으로 자랑하는 수도이지만, 평양의 역사와 문화를 자료에 기초해 치밀하게 연구한 성과는 거의 없다. 반면에 서울에 관한 연구는 활발해 지금은 그 범위가 동 단위로까지 확대됐다. 서울학연구소가 표방한 대로 앞으로 30년가량 평양 연구를 지속하면 현재의 서울 연구 못지않게 수준을 높일 수 있다. 평양 현지 연구자가 참여하면 발전의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기간은 훨씬 짧아질 것이다.


홍재희 서울시의원, 대기배출사업장 관리체계 점검 등 시민 비용부담 개선 실효성 강화 촉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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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의 평양 공동연구는 이기고 지는 싸움이 아니다. 공존공영의 역사·문화 기반을 함께 쌓아 가는 기초작업이다. 이번 평양학총서 발간이 남북한 학술 교류의 디딤돌이 되기를 바란다. 우리 정부도 의심과 반발을 사는 ‘담대한 구상’에만 매달리지 말고 ‘작은 시작’에도 눈을 돌렸으면 한다. ‘작은 시작’에서 신뢰가 쌓이면 ‘담대한 구상’도 펼칠 수 있다. 원래 초라한 시작이 창대한 나중을 낳는 법이다.
2022-09-15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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