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헬렌 켈러/ 우석대 명예교수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헬렌 켈러/ 우석대 명예교수

입력 2022-04-12 20:40
수정 2022-04-13 0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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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2021. 장애인을 대하는 태도는 그 사회의 인격이다.
대전 2021. 장애인을 대하는 태도는 그 사회의 인격이다.
20세기를 살다 간 장애인 중 인간승리의 주인공을 ‘한 명’만 들라면 헬렌 켈러(1880~1968)가 꼽히지 않을까? 볼 수도, 들을 수도, 말할 수도 없는 삼중고의 장애인인 켈러는 1937년 식민지 조선을 방문해 7월 13일 부민관(현 서울시의회)에서 강연했다. 중일전쟁 발발(1937년 7년 7일) 6일 뒤였다. 일본 군국주의의 폭압이 극단으로 치닫던 비상시국이었다.

 류달영(후에 서울대 농대 교수)은 당시 개성 호수돈여고 교사로 있었다. 켈러의 서울 강연을 들으려고 애썼지만 허사였다. 다행히 켈러가 타고 가는 평양행 급행열차가 7월 15일 오후 4시 40분 개성역에서 1분간 정차할 때 객차 뒤쪽 전망대에 나와 강연할 예정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담임 반 학생 50명을 이끌고 개성역에서 기다렸다. 열차가 기적을 울리고 플랫폼으로 들어오는데 벌써 열차의 맨 뒤쪽에는 켈러가 비서 폴리 톰슨과 일본의 유명한 시각장애인 철학교수 이와하시 다케오와 함께 난간을 짚고 서 있었다. 열차가 서자마자 켈러는 강연을 시작했다.

 폴리는 손가락을 펼쳐 켈러의 입술과 목에 대고 입술과 목의 진동을 감지해 그녀의 말을 영어로 옮겼다. 그리고 다른 한 손을 켈러의 손바닥에 대고, 무선전신을 치듯이 손가락으로 두들겨서 주위 상황을 알렸다.

그러면 이와하시는 폴리의 영어를 역에 모인 사람들에게 일본어로 통역했다. 매우 진기한 장면이었다. 역무원들도 구경하느라 넋이 나가 열차가 예정을 넘겨 5분 동안이나 정차했다. 이날 켈러는 ‘이 세상을 향상하게 하는 것은 오직 사랑뿐이며, 사랑이 없는 국가와 사회는 퇴보할 뿐’이라는 요지의 강연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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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헬렌 켈러의 후반 생애는 열정적이었다. 한창때는 장애인을 돕는 일에 하루 18시간씩 바칠 정도였다. 그녀는 사형 제도를 반대하고 인종주의를 거부했으며, 교통수단이 지금과 비교할 수 없으리만큼 열악하던 그 시절 지구를 아홉 바퀴나 돌며 39개국을 방문했다. 공교롭게도 일제의 억압이 혹독하던 시기에 사랑의 메신저 헬렌 켈러는 한국 땅에까지 와서 위로의 말을 건네고 갔다. 켈러의 메시지를 우리는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걸까. 한국 사회가 장애인을 대하는 태도에 부끄러운 점은 없을까.
2022-04-13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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