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의 종교로 읽는 세상] 한국 천주교는 프란치스코 교황보다 보수적인가

[김성호의 종교로 읽는 세상] 한국 천주교는 프란치스코 교황보다 보수적인가

김성호 기자
입력 2020-11-01 20:36
수정 2020-11-02 0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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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 문화부 선임기자
김성호 문화부 선임기자
“동성애자들이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비참해져선 안 된다. 나는 동성애 커플 보호 장치로서 시민결합법을 지지한다.”

지난달 21일(현지시간) 로마 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된 다큐멘터리를 통해 공개된 프란치스코 교황의 ‘동성애 커플’ 지지가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가톨릭의 오랜 가르침과 명백히 모순된다’는 보수 측과 ‘역사적 변화가 시작됐다’는 진보 측 입장이 엇갈린다. 전통을 뒤엎는 가톨릭 최고수장의 발언에 전 세계 천주교계가 뒤숭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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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  서울신문 DB
프란치스코 교황.
서울신문 DB
가톨릭 근본교리를 허물 발언의 파장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는 중에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새 지도부가 출범했다. 6년 임기를 마친 광주대교구장 김희중 대주교의 뒤를 이어 수원교구장 이용훈 주교가 새 의장주교로 선출됐다. 원주교구장 조규만 주교가 부의장, 대전교구장 유흥식 주교가 서기를 맡아 의장을 보필하며 한국 천주교를 이끌게 됐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는 로마 교황청과 한국 천주교회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한다. 교황을 정점으로 한 교황청의 사목과 행정 지침을 한국 교회에 전달·집행하고 한국 천주교의 사목·신행 방향을 결정짓는, 한국 천주교 최고의 의사 결정기구라 할 수 있다. 주교회의의 결정사항은 그대로 한국 천주교회의 실천과 실행으로 이어지는 게 관행이다.

그런 만큼 한국 천주교계는 새 수장을 맞아 긴장한 표정이 역력하다. 이전 김희중 의장 체제와 사뭇 다른 지도부 성향 때문이다. 윤리 전공인 이용훈 주교는 천주교 전통의 가치를 중시하는 보수적 성향으로 평가받는다. 교회일치에 치중하며 개혁적 행보를 이어 온 전 의장과는 사뭇 달라 보인다. 실제로 주교회의는 새 지도부 선출 과정에서 적지 않은 진통을 겪었다는 후문이다. 한국 천주교회의 방향성을 둘러싼 ‘소리 없는 고민’이 읽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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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6일 서울 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신임 주교회의 의장 이용훈 수원교구장 주교와 새 의장단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보수 성향의 의장단이 프란치스코 교황의 동성애 커플 지지에 어떻게 대응할지 관심이 쏠린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제공
지난달 16일 서울 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신임 주교회의 의장 이용훈 수원교구장 주교와 새 의장단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보수 성향의 의장단이 프란치스코 교황의 동성애 커플 지지에 어떻게 대응할지 관심이 쏠린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제공
지난달 16일 서울 중곡동 천주교중앙협의회 강당에서 있었던 신임 의장단 기자회견은 한국 천주교계의 새로운 행보를 확실하게 예시한 자리였다. 회견에서 주된 관심사는 단연 최근 큰 이슈인 ‘낙태죄 폐지’였다. 이 주교를 비롯한 의장단은 기자들의 거듭된 질문에 ‘생명수호와 낙태반대’라는 변함없는 입장을 거듭 강조했다. 이에 반발해 “여성 입장을 이해해 달라”며 집단운동에 나선 천주교 여성 평신도들의 항의에 대해선 “교회 안에서 잘 가르치지 못한 탓으로, 책임을 느낀다”며 “생명수호와 낙태반대를 위한 구체적 실천 방안을 주교회의 차원에서 준비하겠다”고 했다.

‘낙태 절대반대’ 말고도 새 지도부는 생태 환경 보호 등 전통과 윤리의 중시와 집행에 집중했다. 그런 점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발언이 더욱 주목된다. 보수성 짙은 우리 천주교 새 지도부의 출범 시점에 터져 나온 교황의 메가톤급 개혁 발언이 한국 천주교에 미칠 파장 때문이다.

세계 천주교 수장은 이제 동성애를 인정하자는데 한국 천주교 새 지도부는 낙태죄를 한발짝도 양보하지 않을 태세다. 물론 낙태는 프란치스코 교황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앨프리드 슈에레브 주한 교황대사는 지난달 정부가 조건부 낙태를 허용하는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뒤 낙태 합법화 추진에 대한 가톨릭계의 입장을 재확인했다.

하지만 천주교계가 목숨처럼 지켜 허물 수 없다던 그 천부의 영역에서 균열이 생기고 있다. 동성애 커플을 지지한다는 교황의 폭탄 선언 말이다. 이성 간 결합만 인정하던 전통을 허물고 ‘더불어 살아가자’는 현실의 ‘생명 존중’ 요구에 눈과 귀를 트고 있는 것이다.

교황의 ‘동성애 지지’에 한국 천주교가 어떻게 대응할지 궁금하다. 교회의 교리만 고집할 게 아니라 세상 속 사람들의 어려운 입장을 이해해 달라는 천주교 여성 신자들의 목소리가 확산되면서 ‘낙태죄 전면 폐지’를 향한 종교계 연대 움직임도 일고 있는 판국이다. 1984년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2세는 비행기에서 내려 한국 땅을 밟자마자 가장 먼저 ‘순교자의 땅’이라며 땅바닥에 입을 맞췄다. 1만명에서 많게는 2만명의 순교자를 냈다는 그 한국천주교의 뿌리는 누가 뭐래도 평신도다. 이제 그 뿌리가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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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us@seoul.co.kr
2020-11-02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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