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사회면] 대선 날짜 택일을 점쟁이가?

[그때의 사회면] 대선 날짜 택일을 점쟁이가?

손성진 기자
입력 2019-11-03 17:20
수정 2019-11-04 0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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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남산순환도로에 즐비하던 점집들을 도시 미화를 위해 철거한다는 내용의 기사(매일경제 1972년 8월 17일자).
서울 남산순환도로에 즐비하던 점집들을 도시 미화를 위해 철거한다는 내용의 기사(매일경제 1972년 8월 17일자).
1953년 9월 경찰은 미신타파 강조 주간을 정해 점쟁이, 사주쟁이들을 일제히 단속했다. 전후에 불안 심리가 팽배했고 마땅한 일거리가 없어 도심에도 좌판을 펴놓은 점쟁이들이 즐비했다. 점괘나 손금을 보고 비관해 자살한 사건이 종종 보도될 만큼 서민들의 미신에 대한 믿음은 컸다. 1966년 8월 전남 나주의 13개 마을 부녀자 200여명이 명산에 묘를 써 가뭄이 길어졌다며 묘 7개를 파헤쳤다가 경찰 조사를 받았다. 1977년 7월 전북 남원에서도 “여자가 부정한 짓을 하면 비가 온다”는 미신을 믿고 부녀자들이 전라(全裸)로 동네를 돌아다니며 굿판을 벌였다. 물건을 도난당한 무당이 점을 쳐서 식모를 범인으로 고소하자 경찰이 그 말을 믿고 식모를 문초하다 범인을 놓친 황당한 일도 벌어졌다(경향신문 1964년 5월 5일자).

1971년 7월 11일 전남 순천시의 모 관청에서는 돼지 머리를 차려 놓고 징과 북을 두들기며 요란한 굿판을 벌였는데 관청 측은 “흉사가 잇따라 액땜 차원에서 굿을 벌인 것”이라고 해명했다. 간 큰 사주·관상쟁이들은 서울시내 관청의 국장실까지 드나들었고 국과장들이 근무시간에 사주 관상을 보기에 바빴다(동아일보 1954년 7월 15일자). 1960년대 후반에 서울의 후암동 ‘복술가촌’ 등에 점집이 번창했다. 비서를 둔 점쟁이도 있었고 월수입이 50만원(현재 가치 약 5000만원)이나 돼 고액의 사업소득세를 내는 기업형 점집이 23곳이나 됐다고 한다(매일경제 1967년 5월 30일자).

영화계에서도 고사를 지내는 것은 그럴 수 있다 쳐도 극 중에서 부부로 결합되는 남녀 배우의 궁합을 미리 봤으며 궁합이 나쁘면 캐스팅을 꺼렸다. 미신이라기보다 헛소문도 있었는데, 영화배우 L씨가 몰락한 것은 “L씨를 쓰면 망한다”는 미신이 영화계에 퍼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뱀이 나오는 영화는 망한다”는 말도 있었다(경향신문 1975년 7월 19일자).

국가 대사와 주요 투자도 점에 의존할 만큼 정치인, 재벌이 먼저 점과 사주에 빠져 미신 타파 운동도 소용이 없었다. 1969년 10월 10일 점쟁이들은 ‘역술인 대제전’을 열었는데 후원자가 당시 이효상 국회의장과 윤치영 공화당 의장서리였다. 역술인들은 “박정희 대통령은 기필코 삼선을 한다”고 주장했다. 1971년 7대 대선 날짜는 4월 27일이었는데 당시 정부, 여당이 사주쟁이한테 택일을 맡겨 정한 것이며 1972년 10월 17일 10월 유신 발표 날도 점쟁이가 정해 준 날짜라고 한다. 박정희는 공공기관 자리도 풍수지리를 보고 결정했으며 과천정부종합청사도 그런 과정을 거칠 만큼 역술 신봉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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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성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2019-11-04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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