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사회면] “상투는 장발일까요?”

[그때의 사회면] “상투는 장발일까요?”

손성진 기자
입력 2019-04-07 17:18
수정 2019-04-08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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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집의 퇴폐 행위를 고발한 기사(동아일보 1975년 8월 22일자).
술집의 퇴폐 행위를 고발한 기사(동아일보 1975년 8월 22일자).
“하이힐을 벗고 단화를 신어라. 다방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서점으로 돌려라. 귀부인과 같은 그 손가락으로 쌀을 씻어라. 달랑거리는 핸드백을 내던지고 두툼한 책가방을 들어라.” 고려대 학생들이 이화여대 앞에서 ‘퇴폐풍조 배격’ 시위를 벌이며 이런 글이 적힌 전단을 나눠줬다(매일경제 1971년 9월 19일자). 남녀 갈등을 초래할, 요즘은 상상할 수 없는 시위다.

대마초, 장발, 미니스커트를 필두로 한 히피 문화에 당국이 칼을 빼들었던 때가 1971년이다. 퇴폐 단속은 정부 부처 합동으로 일시에 작전처럼 펼쳐졌다. 정부는 10월 유신을 앞두고 국민의 ‘군기’를 잡으려는 목적으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퇴폐라는 이름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억압했다. 방송가에도 단속 바람이 몰아쳤다. 라디오나 TV 프로그램은 안보 방송 위주로 개편됐다. ‘송년 대잔치’, ‘이미자의 가요 앨범’ 같은 건전한 오락 프로와 가요 프로도 퇴폐라는 올가미를 쓰고 폐지되거나 축소됐다(동아일보 1971년 12월 13일자). ‘히식스’, ‘키보이스’ 같은 보컬 그룹사운드들도 설 자리를 잃고 가요계는 소위 ‘뽕짝’ 중심으로 되돌아갔다.

퇴폐 단속은 1971~72년 무렵 절정을 이루었다. 심지어 사립초등학교 교육이 엄청난 낭비이며, 학교를 폐지해야 한다는 칼럼이 지면에 버젓이 실렸다(매일경제 1971년 10월 18일자). ‘꽃반지 끼고’라는 가요가 여고생들에게 퇴락과 탈선을 부를 염려가 있다는 글도 게재됐다. 숙명여대 총학생회는 축제를 무기한 연기하는 한편 검소한 복장을 입기로 결의했다. 상투 머리도 장발로 보고 단속해야 하는지를 놓고 경찰이 고민하다 상부에 문의했더니 “그냥 두라”고 해 단속하지 않았다(경향신문 1972년 1월 31일자). 유명한 뮤직 다방인 서울 명동 심지다방은 대마초 거래와 흡연을 묵인했다는 이유로 폐쇄됐다.

도서잡지윤리위원회는 주간지의 ‘운세풀이’가 교통사고, 사업 실패, 가정불화를 아무런 근거 없이 예언해 불안감을 일으킨다며 게재를 중지시켰다. 어린이들이 이용하는 미니 당구장에는 탈선 오락이라는 낙인이 찍혔다. 밤새 춤을 추는 고고족들을 경찰이 덮쳤고, 급기야 1972년 10월 12일 서울시장은 서울시내 모든 유흥업소에서 고고춤을 금지시켰다. 선정적, 자극적 음악으로 퇴폐풍조를 야기한다는 이유였다. 강력한 단속에도 연예계에 대마초 파동이 일자 박정희 대통령은 법무부 초도 순시에서 “공산당과 결전을 앞두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환각제가 나도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대마초 사범에게 법정 최고형을 구형하라고 지시했다.

손성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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