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수의 헌법 너머] 못난 정치와 갖고픈 정치인

[이종수의 헌법 너머] 못난 정치와 갖고픈 정치인

입력 2019-03-24 21:20
수정 2019-03-25 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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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수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종수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지난 촛불 봉기와 함께 뜨겁게 달아올랐던 개헌 논의는 어느새 오간 데 없고, 1년 남짓 코앞으로 다가온 총선과 선거법 개정 논의로 국회가 시끄럽다. 국회의 대표성과 비례성을 높이려는 비례대표제 확대를 두고 정당 간 셈법과 그간 텃밭과도 같은 자신의 지역구가 없어질지도 모를 현역 의원들의 속내가 자못 복잡하다. 지금처럼 승자 독식에 따른 양당제가 아니라 다당제의 가능성이 높아지는 선거법 개정안이 제1야당의 생뚱맞은 주장처럼 ‘독재할 의도’인지는 지극히 의문이다.

헌법학자로서 정치권에서 줄곧 불거진 개헌론의 이면에는 그간 반복돼 온 정치의 실패를 헌법의 실패로 덮으려는 불순한 의도가 깔려 있다고 여겨 왔다. 그런데 정치가 바뀌지 않으면 그 어떤 헌법을 갖다 붙여도 무망하다. 생각이 서로 다른 많은 사람들이 부대끼며 살아가는 사회 안에서 의례히 갈등이 있기 마련이고, 불거진 여러 갈등을 조정하면서 공동체를 통합해 나가는 일이 업(業)이어야 할 사람이 바로 정치인이다. 그런데 정치인 개인이나 자신이 속한 정파의 이익을 위해 갈등을 방치하거나, 심지어 더욱 부추기기도 한다. 사회 내에서 증폭된 갈등이 파국으로 치닫는 종착지가 ‘내전’이다. 내전은 가장 비참한 전쟁이라고들 한다. 지금껏 멀쩡하게 잘 지내 온 이웃들이 갈등이 불거지고서 하루아침에 서로 적이 돼 총부리를 겨눈다. 내전에서는 승리의 영광도 전리품도 없이 승자와 패자 모두에게 비참한 상흔과 아픔만이 남기에 말 그대로 ‘동족상잔’이다. 그래서 정치의 궁극적인 과업은 내전을 미리 막는 데에 있다.

이런 정치인이 있다. 그의 정치 이력이 그리 화려하지는 않다. 독일 북쪽에 있는 항구 도시 킬에서 태어난 그는 고향에서 줄곧 공부를 하다 변호사가 됐다. 이십대부터 정당 활동을 시작해 1997년에 중앙정치 무대를 떠나기까지 25년 동안 연방의회 의원으로 활동했다. 의원으로 일하는 내내 돈이 되는 그 어떤 부업도 갖지 않았다. 특히 기업과 단체들로부터 일체의 정치후원금을 받지 않았다. 그는 또한 자신의 홈페이지에 수입과 지출을 모두 공개하면서 다른 의원들에게도 강연료, 자문료 등 부수입을 공개하라고 촉구했다. 그러지 않으면 헌법상 보장되는 자유 위임 원칙에 따라 어떠한 지시나 명령을 받지 않는 의원들이 후원금 계좌로 이체되는 돈으로부터는 정작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후 2005년에 독일 연방의회는 이른바 ‘투명성 원칙’을 강조하면서 의원들의 부수입을 공개하도록 관련 법률을 개정했다. 그러자 일부 의원들이 이 같은 부수입의 공개 강제가 위헌이라며 연방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지만, 기각 결정이 내려졌다.

그는 해마다 연방의회가 문을 닫는 한여름 두 달을 부둣가, 쓰레기 소각장, 우체국과 탄광 등을 찾아가서는 땀 흘려 일하며 보냈다. 의회에서 사회정책을 입안하는 그로서는 여러 산업 현장에서 경험을 쌓는 일이 매우 중요하고, 특히 여느 시민들이 몇 푼의 돈을 벌기 위해 얼마나 힘들게 일하는지를 직접 몸으로 느끼는 것이 필요했다고 토로한다. 1997년에 연방의회를 떠나면서 바로 그는 고향인 킬에서 처음으로 실시되는 민선시장직 선거에 나섰고,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됐다. 6년의 시장 임기가 끝나가던 2003년에 다시 재선에 나서라는 주변의 요청을 물리치면서 이렇게 답한다. “정치인은 또한 자신이 물러날 때가 언제인지를 알아야만 합니다.” 여기서 그는 동네 할아버지 같은 인자한 풍모로 어느덧 팔순 나이를 바라보는 노정객인 노르베르트 간젤이다.

우리 정치가 바뀌려면 결국 정치하는 사람이 바뀌어야 한다. 즉 정치인의 재충원 경로가 달라져야 한다. 판검사 또는 전직 고관(高官)이라는 화려한 경력을 배경으로 권력 자체만을 좇기보다도 막스 베버가 강조하는 소명(召命)의식과 진정한 열정이 더욱 중요하다. 로펌에서 매달 수억원의 자문료를 받았던 이가 서민들의 어려움을 말하는 공허함, 받은 정치후원금으로 기부를 하고서 연말정산 때에 알뜰하게 소득공제를 챙기는 황당함, 그리고 바쁜 공직생활 중에도 여러 채 똘똘한 아파트를 챙기고서는 주무 장관이 되겠다고 나서는 몰염치를 늘 일상으로 접해야 하는 국민들의 처지가 참으로 딱하다. 눈 맑은 박재삼 시인이 ‘천년의 바람’에서 남긴 시 한 구절로 글을 닫는다. “사람아 사람아 이상한 것에까지 눈을 돌리고 탐을 내는 사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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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5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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