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현희 기자의 맛있는 맥주 이야기] 초록 입은 기네스 까만 속내, 아일랜드 국민 맥주로 포장

[심현희 기자의 맛있는 맥주 이야기] 초록 입은 기네스 까만 속내, 아일랜드 국민 맥주로 포장

심현희 기자
입력 2018-08-02 22:24
수정 2018-08-03 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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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국민 입맛 사로잡은 기네스, 1759년 귀족 아서 기네스 흑맥주 생산

英 식민지 독립운동 때 영국 흡수 주장
기네스 가문 민족주의자 직원들 해고
아일랜드 자치법안 저지 위해 로비도
아이리시 입맛 담겨도 정신은 못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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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최대 축제 성패트릭데이를 겨냥한 기네스 광고 포스터.  디아지오 제공
아일랜드 최대 축제 성패트릭데이를 겨냥한 기네스 광고 포스터.
디아지오 제공
영국의 이웃 ‘아일랜드’는 기네스 맥주를 빼놓고는 논할 수 없는 나라입니다. 수도 더블린에 있는 기네스 공장과 기네스가 가장 맛있기로 소문난 템플바는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입니다. 아침부터 문을 연 펍에 들어가면 할아버지들은 기네스 맥주 한 잔을 옆에 놓고 신문을 보고 있고요. 일과를 마친 밤에도 사람들은 펍에 모여 기네스를 들고 이야기 꽃을 피웁니다.

아일랜드 최대 축제인 ‘성패트릭데이’에는 아일랜드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아이리시들이 국가를 상징하는 초록색 클로버가 그려진 옷을 입고 기네스를 마십니다. 영국에 700년 동안 지배당한 아일랜드 민족이 “술과 음악을 좋아하고 한이 많다”고들 하는데 여기서 ‘술’이란 기네스를 의미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한국에서도 기네스는 편의점이나 마트에 가면 쉽게 구할 수 있는 친숙한 수입 맥주 가운데 하나죠.

아일랜드와 기네스 맥주의 역사에는 여러 사연이 담겨 있습니다. 더블린에 기네스 양조장을 처음 세운 이는 아서 기네스입니다. 기네스는 북아일랜드 출신의 귀족 가문이었는데요. 조부와 아버지로부터 양조 기술을 배운 아서는 1700년대 당시 영국에서 대유행했던 ‘포터’(스타우트) 스타일의 맥주를 아일랜드에서 만들어 팔아 보기로 합니다. 포터는 강한 불에 구워 검게 탄 맥아를 에일 방식으로 만든 흑맥주입니다. 아서는 1759년 폐허로 있던 더블린의 한 양조장을 헐값에 9000년간 계약을 맺고 임대해 본격적으로 포터를 생산했는데, 이 맥주는 순식간에 아일랜드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았죠. 입소문이 퍼지자 기네스 맥주는 영국에 이어 가까운 유럽 국가에도 수출됐습니다. 아서는 맥주로 큰돈을 벌었죠.

그럼 기네스가 탄생했던 당시 아일랜드 상황을 떠올려 볼까요? 아일랜드가 1921년에 독립을 했으니 당시 아일랜드섬은 영국의 식민지였습니다. 독립 과정에서 아일랜드 사람들은 수많은 피를 흘려야 했습니다. 독립은 1916년 아일랜드공화국군(IRA)과 영국군이 전쟁을 치른 결과였죠. 대신 아일랜드섬은 남북으로 쪼개집니다. 종교 갈등 때문이었는데요. 과거 잉글랜드 개신교(성공회)인들이 대거 이주해 북부 지방에 정착했기 때문에 개신교도 수가 많은 북쪽에선 영국 잔류를 원하며 반독립운동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결국 북부 얼스터 지방의 6개 주는 독자적 의회를 구성해 영국의 구성원으로 남았고, 영국령 북아일랜드가 됐습니다. 가톨릭이 국교인 남쪽 아일랜드가 오늘날 아일랜드공화국입니다.

기네스 가문은 줄곧 아일랜드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을 반대하고 아일랜드의 영국 흡수를 주장한 통일당(Unionist)을 후원했습니다. 1798년에는 아일랜드 민족주의자들이 아서를 영국의 스파이라고 고발하는 해프닝까지 있었을 정도입니다.

후손들도 아서의 뜻을 이어받아 통일당을 지지했는데요. 기네스 가문은 1913년에는 아일랜드 자치법안을 저지하기 위해 정치자금을 후원하기도 했습니다. 1916년에는 IRA와 영국군을 지원하고 아일랜드 민족주의자로 알려진 직원들을 해고하기도 했고요. 목숨 걸고 독립한 과거 남쪽의 아일랜드 사람들을 떠올려 보면 기네스는 매우 껄끄러운 술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맥주에 얽힌 이야기를 알고자 하는 건 맥주를 더 맛있게 즐기기 위함입니다. 기네스 속에는 이처럼 보통의 이야기 이상이 담겨 있답니다. 스타우트 가운데 기네스처럼 균형이 완벽하고 음용성이 뛰어난 맥주도 드뭅니다. 기네스가 세계적인 스타우트 맥주로 거듭난 이유이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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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cduck@seoul.co.kr
2018-08-03 3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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