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권광장] 분권! 머뭇거릴 때가 아니다/김기현 울산광역시장

[분권광장] 분권! 머뭇거릴 때가 아니다/김기현 울산광역시장

입력 2018-01-16 20:46
수정 2018-01-16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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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현 울산광역시장
김기현 울산광역시장
올겨울은 유난하다. 한반도 동남단 울산이 영하 10도를 밑돌 정도다. 유난스런 찬바람 속에 ‘분권광장’ 글감을 정리하는 마음도 다급해진다. 긴 세월 치열하게 토론해 왔고, 절규에 가까운 분권 개헌과 논의가 제 기능을 못 하지 않을까 하는 초조함이다.

김관용 경북지사 글을 시작으로 이어 온 ‘분권광장’은 지방분권의 필요성과 시급성을 아주 잘 지적해 놓았다. 시·도지사들의 글은 일맥 상통했다. 분권이 답이라는 것. 시도지사협의회에서 분권특위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는 필자도 마찬가지다.

분권특위는 많은 활동을 했다. 시·도지사, 전문가들 토론을 거쳤고, 지역별 순회 토론회도 열었다. 그 모든 토론 결론은 하나였다. 분권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며, 국가와 지방의 미래라는 것이다. 당장 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앙과 지방의 권한 분배와 조정은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우리보다 50여년 전 현대적 의미의 지방자치를 시작한 일본도 그랬고, 정도 차이는 있지만 비슷한 궤적을 가진 모든 나라가 그렇다.

1990년대 초반 호소카와 모리히로 총리는 구마모토 현지사 시절 지방에서 버스 정류장 10m를 옮기려 해도 일일이 중앙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탄식했다. 그래서 지사 시절 1년의 3분의1을 도쿄에서 중앙정부의 협조를 구하는 데 보냈다고 했다. 지금은 어떻게 바뀌었는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서울로, 세종시로 뛰어다녀야 하는 우리 현실과 너무 닮았다. 당시 일본은 ‘3할 자치’라는 자조 속에 있었고, 지금 우리는 ‘2할 자치’라는 자조 속에 있다는 것까지 닮았다.

이런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입법권, 조직권, 재정권을 과감하게 이양해야 하고, 대못처럼 헌법에 담아야 한다는 것이 지방의 일치된 목소리다. 결론은 이처럼 명쾌하고, 문재인 정부의 개헌 방침도 확고하지만, 지방은 여전히 ‘이러다 또 어물어물 넘어가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떨치지 못한다. 여의도 정치와 정부가 서로에게 적당히 ‘뒷문’을 열어 주면서 시간을 끌다 말짱 도루묵이 되지 않을까 하는 경험에서 오는 의심이다.

‘남이와 엿장수’라는 단편소설이 있다. 지금은 ‘고무신’이란 이름으로 바뀐 이 소설은 울산이 낳은 단편문학의 거장 난계 오영수의 데뷔작이다. 난계는 “보리밭 이랑에 모이를 줍는 낮닭 울음만이 이따금씩 들려오는 고요한 마을”에 찾아오는 엿장수와 식모살이하는 남이의 이뤄지지 않은 로맨스를 그렸다.

난계는 마을 아이들에게 엿장수 존재는 커다란 매력이었고 세상에서 가장 부러운 것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썼다. 어떤 날은 뭉텅 잘라 주기도 하고, 어떤 날은 침만 삼키게 하기도 하는 엿장수는 아이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그런 엿장수가 남이에게 연정을 품었지만 머뭇거리다 끝내 말도 제대로 못하고, 남이는 친부 손에 이끌려 얼굴 모르는 사내와 결혼하기 위해 길을 떠난다는 것이 소설의 얼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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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계는 인습에 물든 세태에서 질식하는 낭만적 연애를 통해 울림을 던져 주려 했을지 모르겠지만, 새해 들어 분권과 개헌 관련 소식을 들으면서 ‘남이와 엿장수’가 생각난다. 엿판에 모여드는 아이들 시선을 즐기고, 엿가락 잘라 주는 재미에 빠져 정작 ‘남이’라는 미래와 희망을 떠나보내는 엿장수가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난계는 ‘남이’가 떠나는 날 “울음고개 위에서 멀거니 바라보는 엿장수”를 묘파하면서 소설을 맺었다. 우리가 그런 ‘엿장수’는 아닌가? 엿판이라는 달콤한 권력에 취해 있는 것은 아닌가? 지금은 취해 있을 때도, 머뭇거릴 때도 아니다. 연초 기록적인 한파는 그걸 일깨우기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2018-01-17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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