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내린 폭설에 팔뚝 선뜻 내어 준 깨끗해서 두려워라 허리 굽은 조선 솔, 찢어진 허공에 내건 얼어붙은 절명시(絶命詩)여
더 이상 갈 곳 없이 먹바위 벼랑 끝에 누군가 벗어 놓은 수직의 빙폭(氷瀑) 한 필, 막혔던 마음 문 열면 물소리도 들릴까
한 폭의 깨끗한 산수화 같은 시다. 폭설을 얹은 채 그 무게를 감당하느라 휜 소나무 가지, 벼랑 아래로 떨어지던 물은 꽝꽝 얼어붙었다. 물이 얼어붙자 물소리 그치고 세상천지는 적막할 따름이다. 먹잇감이 귀한 겨울철은 고라니며 너구리며 들쥐며 다람쥐 따위 산 짐승 식구에게는 고난의 행군이 시작한다. 그래도 먹고살아야 하니 눈 속을 파헤쳐 먹이를 구한다. 눈 덮인 겨울 산천은 찬 기운을 품은 채 고요하고 스산하지만 그 풍경 어딘가에는 느슨한 마음을 바로 세우게 하는 매운 정신의 결기가 맺혀 있다.
장석주 시인
2018-01-06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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