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욱동 창문을 열며] 장미와 이름

[김욱동 창문을 열며] 장미와 이름

입력 2017-09-17 17:32
수정 2017-09-17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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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셰익스피어의 5대 비극’ 가운데 한 작품으로 일컫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오랫동안 반목과 질시를 거듭해 온 원수 집안 몬태규의 아들 로미오를 사랑하는 줄리엣, 그녀는 ‘몬태규’라는 이름이 그저 원망스러울 뿐이다. 그러나 줄리엣은 로미오에게 “이름이란 게 도대체 무엇인가요. 장미는 다른 어떤 이름으로 불러도 향기는 마찬가지지요”라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이름이 아니라 실체라는 말이다. 그러나 장미는 과연 다른 이름으로 불러도 그대로 장미일까. 이름이란 한낱 이름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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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욱동 문화평론가·UNIST 초빙교수
김욱동 문화평론가·UNIST 초빙교수
최근 부산의 한 초등학교 학생이 자신의 학교 이름을 바꾸는 데 앞장서서 눈길을 끌었다. 학생회장 선거에서 부회장에 입후보한 하모군은 학교 이름을 ‘대변초등학교’에서 ‘용암초등학교’로 바꾸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실제로 이 학생은 부회장에 선출됐고, 선배들과 학부모들의 서명을 이끌어내 학교 이름을 곧 변경할 단계에 이르렀다. 동창회 이사회는 지난 7월 교명을 변경하기로 방침을 세우고 새 교명을 ‘용암초등학교’로 정했다. 대변초등 운영위원회에서 새 교명을 최종 승인하면 부산교육청 교명선정위원회 심의를 받을 예정이다. 그 뒤 부산시의회가 부산시 조례를 개정하면 마침내 새 교명이 확정된다. 이 학교는 과거에도 학교 이름을 바꾸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일부 동문과 주민들의 반대로 번번이 무산됐다가 이번에 하군이 나서는 바람에 마침내 빛을 보게 된 것이다.

부산시 기장군에는 대변리(大邊里)라는 조그마한 어촌이 있고, 이곳에 위치한 학교가 바로 ‘대변초등학교’다. 이 마을은 본디 ‘대변포’였다가 행정구역이 바뀌면서 대변리가 됐다. 이 마을에 이런 이름이 붙은 것은 동해와 남해가 만나는 지점으로 해변이 크고 넓기 때문이다. 의미로 보자면 이보다 더 적절한 이름도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 ‘대변’이라는 말이 ‘대변’(大便)과 발음이 같다는 데 있다. 소변도 아니고 대변이어서 처음 듣는 사람들에게는 자칫 부정적 뉘앙스를 풍기게 마련이다. 실제로 하군이 이렇게 학교 이름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도 그런 부정적 이미지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3년 때 기장군수배 축구대회에 나갔다가 다른 학교 친구들로부터 ‘똥학교’ 선수라는 놀림을 받고 충격을 받았다. 그 뒤 자신처럼 놀림받고 상처받는 친구들이 많다는 사실을 확인한 그는 교명을 바꿀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실제로 이런 예는 외국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미국의 유명한 다국적 햄버거기업 하면 맥도날드나 버거킹을 쉽게 떠올리지만 미국 남부 지역에서는 웬디스도 두 회사 못지않게 유명하거나, 아니 어떤 점에서는 그들보다 더 유명하다. 특히 웬디스 햄버거는 토마토를 비롯한 야채를 많이 넣어 집에서 직접 만든 것 같은 햄버거를 내놓아 호평을 받았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인기를 끄는 웬디스 햄버거가 영국에 상륙해서는 도무지 맥을 추지 못했다. 회사에서 다각도로 분석해 봤지만 마땅한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러던 중 마침내 햄버거 이름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음식을 많이 먹는 고객을 위해 햄버거 회사들마다 ‘빅맥’이니 ‘와퍼’니 하는 큰 사이즈의 제품을 내놓는다. 웬디스 회사가 내놓은 큰 사이즈 햄버거의 이름은 다름아닌 ‘비기스’(Biggies)였다. 그런데 ‘비기스’라는 영어 단어는 큰 물건, 크고 중요한 사람, 거물 등을 뜻하지만 대변이라는 뜻도 있다. 어느 누가 대변을 연상하는 햄버거를 먹으려고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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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18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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