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만 논설위원
SK의 하이닉스 인수는 일종의 승부수였다. 9조원을 웃도는 부채를 떠안고 여기에 3조 3000억원의 인수자금을 보태야 했다. 자칫 공룡 기업을 인수해 모기업이 휘청거리는 승자의 저주가 될 것이란 예측도 많았다. ‘밑빠진 독에 물붓기’라며 현재를 주목한 임원들과 달리 SK 최태원 회장은 미래를 쳐다봤다고 한다. 내수 위주의 SK그룹 사업 구조를 수출로 전환할 기회로 본 것이다. “우리의 자존심과 혼을 담보로 회사를 일으키겠다”는 직원들의 결의에 찬 노력도 최 회장의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인수 이후 연평균 4조원을 쏟아부었다. 1995년 26개에 달했던 D램 제조업체 수는 살벌한 가격 인하 경쟁이란 ‘치킨게임’을 겪으면서 현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3개 업체만 살아남았다.
인생지사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잡주 중의 잡주로 통했던 하이닉스가 지난해부터 계속되는 외국인 러브콜에 힘입어 사상 처음 외국인 지분율 50%를 돌파했다. 주가도 두 배 이상으로 껑충 뛰었다. 코스피에서 정보기술(IT) 기업의 외국인 주식 보유 비중이 절반을 넘긴 종목은 네이버와 삼성전자에 이어 세 번째다. 영업이익도 올해 5조원에 육박하면서 SK그룹을 먹여 살리는 효자 기업이 된 것이다.
역사학자 토인비는 인류의 역사를 도전과 응전이란 말로 함축적으로 정의했지만 기업의 운명 역시 비슷한 경로를 겪는다.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통찰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것에 과감히 도전하는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정신에 의해 좌우된다. 기업가가 깨어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땅콩리턴’으로 우리 사회 월급쟁이, 미생(未生)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던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과 대비되는 대목이다. 모든 직원을 자기 소유물로 여기는 전근대적 천민자본주의 사고 방식으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같은 목표로 향해 가는 신바람 난 기업 문화를 만들지 못할 것이다.
oilman@seoul.co.kr
2014-12-12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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