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물과 산 다듬기보다 살리는 게 중요”

“서울 물과 산 다듬기보다 살리는 게 중요”

입력 2010-10-04 00:00
수정 2010-10-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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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3대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

“서울은 전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물게 도시 안에 여러 곳의 물과 산을 갖고 있습니다. 건축가들이 도시를 설계할 때 가장 중시하는 공간적인 구분, 구획 정리가 이미 자연적으로 만들어져 있는 천혜의 땅이죠. 인공적인 조경을 집어넣을 필요도 없이 그냥 그 위에 건물을 채워넣으면 됩니다. 다만 물과 산은 자연적으로 순환하도록 돼 있다는 점을 잊지 말고, 이를 깎거나 다듬기보다는 자연적인 지형지물을 살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마리오 보타, 장 누벨과 함께 세계 3대 건축가로 꼽히는 도미니크 페로는 서울이 갖고 있는 자연조건이 도시계획에 아주 적합하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파리 미테랑 도서관 설계로 전 세계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한 페로는 이화여대ECC와 여수엑스포 설계를 맡으며 한국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서울 물과 산 다듬기보다 살리는게 중요

페로는 도시계획을 ‘건물보다 풍경에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정의했다. 그는 “아름답고 특이한 건물을 짓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 건물이 서 있는 환경과 조화가 맞아야만 진정 훌륭한 건물이 되고 결국 도시 경관으로 이어질 수 있다.”면서 “한국 등 아시아의 경우에는 비어 있는 열린 공간을 하나씩 채우는 전통이 있기 때문에 환경과의 조화에서 좀 더 유리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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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니크 페로
도미니크 페로
‘리모델링의 대가’라는 별칭답게 리모델링에 대한 조언도 이어졌다. 전후 지어진 건물들이 대대적인 재건축과 리모델링의 시기를 맞고 있는 서울 등 한국의 도시 입장에서는 귀담아 들을 부분이었다. 그는 “단순히 건물을 새로 짓는다는 식으로 접근하기보다는 그 건물이 담고 있는 이야기에 주목해야 한다.”면서 “건물이 갖고 있는 역사를 그대로 담아내면서 좀 더 살기 좋고 바람직한 건물로 바꾸는 것이 진정한 리모델링”이라고 강조했다.

페로는 “미래의 도시계획에 있어서는 땅이 중요하다.”고 잘라 말했다. 전통적인 건축과 도시계획의 개념으로 보면 땅은 단순히 무언가를 얹어 놓는 공간에 불과하지만 페로는 땅이 건물의 4개 면과 지붕에 이은 6번째 면이라는 지론을 갖고 있다. 그래서 ‘땅을 재단하는 건축가’로 불린다. 실제로 이화여대ECC를 비롯한 그의 건물에서는 지하공간이 지상공간 못지않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서울시가 지하도시의 타당성을 검토하고 있다고 하자 “꼭 참여해 보고 싶다.”며 내용을 꼼꼼히 받아적기도 했다.

그랑파리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정치권이 큰 그림을 그려 담론을 던지면 그 후에 민간에서 선택 답안지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면서 “도시계획이라는 거대한 프로젝트에서는 오스만의 파리 개혁 프로젝트 때도 그랬고 역사적으로 항상 초기 단계에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녹색도시는 이상… 점진 추가해야 도움

페로는 “많은 사람들이 미래도시를 녹색도시라고 말하지만 이는 이상적인 비전일 뿐”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삶의 방식을 바꾸는 등 친환경적인 요소를 조금씩 추가해 가면서 도시계획과 건축의 체질을 바꿀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고 덧붙였다.

페로는 “이화여대ECC 같은 경우에 시대의 흐름에 맞춰 지상공간을 많이 남겨 두고 지하공간을 활용하면서 친환경적인 요소를 추가해 봤다.”면서 “만약 5~6년 전에 공모전이 진행됐다면 분명히 당선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누구보다 창조적인 직업인 건축의 세계에서 30년 넘도록 최고의 위치를 지키고 있는 비결을 묻자 페로는 “창조는 길을 가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답했다. 남들이 가는 길, 쉬운 길보다 어려운 길, 돌아가는 길을 택하면 창조는 자연스럽게 얻어진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파리 박건형순회특파원 kitsch@seoul.co.kr

●페로는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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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3대 건축가의 한 명으로 꼽힌다. ‘지하공간의 마스터’ ‘리모델링의 대가’ ‘땅을 재단하는 건축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70년대 파리 미국문화원 건물을 리모델링해 4개의 펼쳐놓은 책 모양을 한 미테랑 도서관을 설계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단순한 기하학 형태를 선호하며 특정 스타일의 정형화된 건축물 대신 지역의 역사·문화·지리적 여건을 두루 반영하는 친환경 건축가로 유명하다. EU대법원 청사, 독일 베를린 올림픽 자전거 및 수영경기장, 이화여대 ECC 등을 설계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2010-10-04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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