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정의 영화 in] 소설보다 낯선, 플롯없는 인생

[강유정의 영화 in] 소설보다 낯선, 플롯없는 인생

입력 2007-09-01 00:00
수정 2007-09-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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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언제 소설을 읽고 영화를 보는가? 아니, 당신은 어떨 때 소설을 읽는 순간이나 영화를 보는 자신에게 만족하는가? 영화 혹은 소설은 중력의 법칙처럼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삶의 순간들을 낯설게 만들어 준다. 그 낯섦으로 인해 버릇 같던 일상들, 습관 같던 하루하루는 다른 순간들로 비약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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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하나 읽지 않는다 해도 삶은 굴러가지만 소설 한 편을 읽는 순간 당신의 삶은 다른 쪽을 향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것은 위험한 선택이기도 하지만 비속한 삶을 견인해 주는 발견이 되기도 한다.

마크 포스터 감독의 ‘스트레인저 댄 픽션’은 영화가 그리고 소설이 어떻게 삶을 바꿔주는지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일분 일초의 어긋남도 없이 정해진 일상의 질서를 따라가는 세무 공무원 해럴드(윌 페럴). 그의 삶에 낯선 목소리가 침투한다. 그 목소리는 마치 자신의 마음 속에 들어와 있는 듯 그의 심리와 일거수일투족을 예견하고 기록하고 보고한다. 아니 그것은 마음 속으로 침투했다기보다 뚜껑이 닫힌 채 은닉돼 있던 자신의 목소리가 되돌아왔다고 말하는 편이 옳다.

문제는, 그 목소리가 “해럴드 크릭은 예상치 못한 죽음을 맞게 될 것이다.”라고 예고한 데서 비롯된다. 전지적 작가 시점의 목소리가 살아 있는 인물 해럴드의 죽음을 밝혀버린 것이다. 이제부터 그의 삶은 조금씩 바뀌어 간다. 잠옷처럼 편안했던 규칙성을 깨뜨리기도 하고 말할 수 없는 예외성에 자신의 삶을 맡기기도 한다. 일상은 새로운 의미로 격상돼 매 순간이 중요한 지점으로 의미를 지닌다. 죽음에 대한 경고가 그의 삶을 삶다운 것으로 변화시킨 것이다.

영화의 또 한 줄거리는 해럴드의 삶을 직조하는 소설가이다. 그녀는 신의 존재를 부정하며 죽음으로 끝나는 소설이야말로 삶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어떻게 하면 일관성 있게, 개연성 있게 자신의 인물을 죽일 수 있을지 고심한다. 그녀의 결말에는 주인공이 죽는다, 외에는 없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갑자기 자신의 삶을 각성했다는 점에서 해럴드는 신과 접촉한 구도자와 닮아 있다. 이는 한편 한 사람의 목숨과 인생을 창조해가는 소설가가 신과 유사하다는 점에서도 반복된다. 하지만 우리는 결코 신도 구도자도 아니다. 다만 플롯이라고 말하는 인위적 구성 안에서 불가해한 인생을 조종해 볼 뿐이다. 해럴드는 시간의 조절을 정복이라 믿고, 소설가는 모든 인생을 개연성 안에 가둔다. 하지만 정작 인생에는 플롯이 없다.

결국 이 작품은 관객의 무감한 신경을 건드리는 데 성공한다. 해럴드처럼 하루하루를 견디던 일상적인 자아, 소설가처럼 일상을 조종한다고 믿었던 자아는 영화를 보는 내내 조금씩 무너진다. 그렇게 무너진 끝에 소설보다 이상하지만, 결국 내 것일 수밖에 없는 삶과 만나게 된다. 인생에는 플롯도 개연성도 필연성도 없지만 알 수 없는 우연성 속에서 삶은 자체로 빛난다. 빛나는 인생의 우연성, 어쩌면 그 안에 신이 존재할지도 모를 일이다.6일 스폰지 개봉.

영화평론가
2007-09-01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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