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학교생활 어떤가요” 선생님“친구들과 잘 어울려요”
‘가정방문의 추억’이 살아나고 있다. 미풍양속으로 여겨졌던 가정방문을 교육인적자원부가 자제하도록 권고한 것은 1990년대 초반. 촌지 등 크고 작은 잡음 때문이었다. 그러나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격’이라는 지적이 나오면서 몇 년 전부터 운동 차원에서 확산되고 있다. 교사와 학부모간 신뢰를 쌓고, 교육 효과까지 거두고 있는 가정방문 현장을 따라가 봤다.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상도5동 상현중학교 교정. 하늘은 당장이라도 봄비를 뿌릴 듯 잔뜩 찌푸렸지만 학교를 나서는 김승진(36) 교사의 발걸음은 봄바람에 날리는 벚꽃처럼 가벼워 보였다.‘지은이와 형호의 공부 방은 어떤 모습일까.’ 그의 얼굴에는 벌써부터 호기심 어린 미소가 배어나왔다.
이날은 체육교사이자 2학년 2반 담임인 김 교사가 올해 처음으로 가정방문을 가는 날. 그의 가정방문은 올해로 4년째다.2002년 ‘좋은교사운동’에 가입한 뒤 이듬해부터 담임을 맡게 되면 학기 초에 어김없이 실천하고 있는 연례 행사다.2000년 교단에 선 뒤 ‘어떻게 하면 더 나은 교사가 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시작한 작은 실천이었다.
●허물없는 대화… 정성어린 조언
그는 올해도 가정방문에 앞서 지난달 19일 미리 가정통신문을 보냈다.‘학생에 대해 아는 만큼 관심을 갖고 사랑하고 학교생활을 도울 수 있습니다.’라는 정성이 듬뿍 담긴 편지에 학부모 모두 찬성의 뜻을 전해왔다. 방문 시간도 평일과 토요일 방과후 15∼20분 정도, 음식이나 선물은 일절 준비하지 말라고 못박아 부담감을 갖지 않도록 배려했다. 김 교사는 “가정방문은 아이들과 즐겁게 한 해를 보내기 위한 프로그램의 하나”라면서 “가정방문을 하고 나면 확실히 아이들과 더 가까워지는 것을 느낀다.”고 웃어보였다.
오후 4시 첫 방문가정인 지은(가명·14)이네 집. 어머니 김정희(가명·42)씨가 반갑게 그를 맞았다.‘귀한 손님’에 조금 긴장한 듯했다. 그러나 지은이 얘기에 첫 만남의 어색함은 눈녹듯 사라졌다. 이날의 화제는 얼마 전 지은이가 수업을 빠진 ‘사건’이었다. 김 교사가 개인 사정으로 학교를 비우던 날, 쉬는 시간에 친구들과 떡볶이를 사먹고 다음 시간 수업을 빠진 것이 도마 위에 올랐다. 사소한 일이었지만 어머니 김씨는 지은이의 잘못에 곤혹스러워했다.“어머니 많이 놀래셨죠? 하지만 제가 단단히 주의를 줬고 지은이도 반성하고 있는 만큼 다음부터는 절대 그런 일 없을 겁니다.” 김 교사는 어머니를 안심시켰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지은이의 관심 분야로 넘어가고 있었다.“지은이는 꾸미는 걸 좋아해서 자기 방 벽에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만화 뒷이야기를 지어서 그리기도 합니다. 케이크나 쿠키 만들기도 좋아해 혼자 만들어 가족들에게 맛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공부를 싫어해서 걱정이에요.” 어머니의 걱정은 역시나 지은이의 공부였다. 아닌 게 아니라 가정방문 동안 옆에서 자신의 생각을 기록하도록 한 지은이의 공책에는 ‘공부 때문에 많은 것을 못함. 공부가 꿈을 이루는 데 방해가 됨’이라고 쓰여 있었다. 지은이의 철부지 행동에 김 교사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어머니, 지은이가 장래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공부도 꼭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해주세요. 그러면 누가 꼭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참을성 있게 공부하는 습관을 붙이게 되거든요.” 20분으로 예정했던 시간은 어느새 40분을 넘기고 있었다. 어머니 김씨는 담임의 정성어린 조언에 걱정을 크게 더는 듯했다.
●학교에선 몰랐던 새로운 모습 발견
이날 두 번째 방문가정은 형호(14)네였다.“형호가 학교에서 친구들이랑 잘 지내던가요?” 형호 어머니 장경주(48)씨는 집에서는 활달하지만 바깥에만 나가면 얌전해지는 형호가 사뭇 걱정스러운 듯했다.“평소에 있는 듯 없는 듯 내성적인 성격이지만, 솔직하고 정직해서 친구들과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김 교사의 말에 장씨는 한시름 놓았다. 장씨는 형호가 암기과목을 싫어해 걱정이라고 했다. 김 선생님은 억지로 외우게 하는 것보다는 관심을 불러일으켜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장씨는 “학교에 찾아가는 게 어렵게만 느껴지는데, 이렇게 직접 찾아와 주셔서 허물없이 대화를 나누니 마음도 편하고 안심도 돼 좋은 것 같다.”며 고마워했다.
이날 공식적인 가정방문은 끝났지만 김 교사의 일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인터넷 학급 카페에 가정방문 후기를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학급 친구들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아이들을 위한 작은 배려다. 자세한 내용까지 속속들이 다 쓰진 못하지만, 아이들은 마치 자신들이 친구 집에 놀러간 것처럼 좋아한다고 한다.
“학교에서 몰랐던 아이들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가정방문의 보람을 느낍니다. 또 이른바 ‘문제 아이’들이 가정방문 후 태도가 달라지고 선생님을 믿는 눈빛을 보여줄 때 ‘가정방문을 하길 잘 했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집으로 발길을 향하는 김 교사의 얼굴에는 아이들을 위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았다.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2007-04-10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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