儒林(709)-제6부 理氣互發說 제2장 四端七情論 (55)

儒林(709)-제6부 理氣互發說 제2장 四端七情論 (55)

입력 2006-10-11 00:00
수정 2006-10-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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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부 理氣互發說

제2장 四端七情論(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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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의 편지는 다음과 같이 이어지고 있다.

“…때론 그때마다 이전 유학자들의 학설을 찾아서 따다가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그대의 변론에 회답하는 말로 삼았습니다. 이는 과거를 보는 사람이 과장에 들어가서 시제(試題)를 보고서 고사(故事)를 따다 조목별로 대답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설혹 이와 같은 저의 회답이 매우 타당했다 하더라도 자신의 학문을 충실하게 하는 데는 조금도 도움되는 것이 없으니 다만 부질없는 다툼으로 고귀한 학문(聖門)의 중요한 금기를 범하는 것이 될 뿐입니다. 더구나 반드시 타당하다고도 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닙니다.”

그러고 나서 퇴계는 4년여에 걸친 두 사람의 논쟁을 그만 그치자는 내용의 절구 한 수를 지어 고봉에게 보낸다. 퇴계의 익살스러우면서도 풍자적인 유머 정신이 번득이는 절구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런 까닭에 다시 전날처럼 용감히 회답할 마음을 먹지 않고 다만 두 사람이 말에 짐을 실은 것에 비유한 그대의 편지를 따라서 장난 삼아 절구 한 수를 지어 보냅니다.

‘짐을 싣는 두 사람 경중을 다투지만 생각하니 높고 낮음 같아져 버렸네. 이쪽을 누르고 저쪽으로 돌리자면

짐의 무게 언제나 공평해질까’ 하하.”

퇴계의 이 편지를 계기로 우리나라 철학사상 가장 격렬했던 4년간에 걸친 사칠논변은 끝이 나게 된다.

퇴계가 고봉에게 이 편지를 보낸 것은 1562년 명종 17년 퇴계의 나이 62세 때의 일이었으니, 이미 8년 전의 일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퇴계 자신도 고봉과의 이런 논쟁이 편지의 내용처럼 ‘부질없는 다툼으로 고귀한 학문의 중요한 금기를 범하는 일’이라고 우려하고 있었지만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퇴계의 핵심 사상인 ‘이기이원론’을 확립시킨 결정적인 동기가 된 셈이었으니, 그런 의미에서 26살의 나이 차이가 나는 젊은 청년 고봉이야말로 퇴계에게 있어 ‘이기이원론’을 더 세밀하고 굳건하게 세우게 한 일등공신이었던 것이다.

이렇듯 고봉과의 사단칠정 논쟁은 퇴계를 유교 이론가로서 뛰어난 지성을 심화시킨 계기가 되었으며, 퇴계의 위대성은 이론상의 격물(格物)에 그치지 않고 치지(致知)에 도달하려는 치열한 학구정신을 한층 더 성숙시킨 모습에서 드러나고 있음인 것이다.

퇴계가 당대는 물론이고 21세기의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또 조선에 머물지 않고 동양유교문화권의 슈퍼스타로 세계적인 사상가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손자 제자뻘에 해당하는 고봉이나 율곡과 같은 후학으로부터 배우는 것을 부끄러워하기는커녕 그들을 학우(學友)라고 부르며 오히려 함께 도학을 논하는 것을 기뻐하였던 참된 선비 정신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니, 중국 근대사상가인 양계초(梁啓超)가 퇴계를 공부자(孔夫子)와 같은 칭호인 이부자(李夫子)로 표현함으로써 퇴계를 유가의 완성자로 성인의 반열에 올렸던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2006-10-11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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