儒林(697)-제6부 理氣互發說 제2장 四端七情論(43)

儒林(697)-제6부 理氣互發說 제2장 四端七情論(43)

입력 2006-09-22 00:00
수정 2006-09-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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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부 理氣互發說

제2장 四端七情論(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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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학의 집대성자 주자.

주자가 신유학의 완성자라고 불리기보다 집대성자(集大成者)로 불리게 된 것은 주자가 태어난 시대적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주자가 태어난 시대는 어떤 의미에서 맹자가 태어난 시대와 비슷한 사상적 혼란기였다.

물론 맹자와 주자는 1500년의 시차를 두고 태어난 사상가였으나 맹자가 태어난 시기는 고자, 양자, 묵가, 농가, 법가 등 백가(百家)들이 쟁명하고 있던 백화제방(百花齊放)의 혼란기였다.

이 혼란 속에서 맹자는 유가의 검투사로서 강호의 무림고수들과 일일이 죽느냐 사느냐의 사생결단의 필살검을 휘둘렀으며, 단 한번도 패하지 않았던 전설적인 유가의 맹장이었다.

‘사단론’과 ‘성선설’의 대표적인 맹자의 철학사상은 그들과의 싸움에서 오히려 발전, 형성되었으며, 따라서 맹자는 훗날 아성(亞聖)으로까지 불리게 되었던 것이다.

주자가 태어난 시기도 이와 마찬가지로 수많은 사상가로 가득했던 학문적 르네상스시대였다.

다만 다양한 사상들이 격전을 벌였던 맹자의 백가쟁명 시대와는 달리 주자의 시대에는 거의 모든 사상가들이 약속이나 한 듯 신유학 하나만의 철학으로 각기 나름대로 독창적인 화음을 구가하고 있었던 혼성합창(混聲合唱)의 시대였던 것이다.

이런 독특한 시대적 배경은 송(宋) 대로 들어오면서 많은 사상가들은 기존의 도교나 불교에 실망하고 염증을 느꼈던 데서 비롯되었다.

그 결과 많은 사상가들은 이제껏 유학자들이 관심을 기울여 온 인간의 문제에서 한차원 높은 조화의 원리로 눈을 뜨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주돈이의 ‘태극’과 ‘음양론’, 장재의 ‘기론(氣論)’, 소옹(邵雍)의 ‘수리철학(數理哲學)’, 정호, 정이형제의 ‘성리론’ 등의 신유학의 물결이 출렁이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이는 중국에 있어 사회계층의 변동, 곧 중국문화의 주체세력의 변화로 말미암은 사회적 현상의 결과이기도 하였다.

당대 말엽부터 이제까지 중국의 사회와 정치를 지배해오던 호족들이 망하면서 도시의 공상(工商)계급이 큰 부를 쌓아 새로운 세력으로 대두되고, 서민들의 영향력도 급격히 신장하였다. 기존의 사대부들은 족벌 때문에 저절로 지배계층에 오른 계급사회의 일원이었는데, 당대 말엽부터 시작된 송나라의 사대부들은 거의 모두가 남보다 몇 갑절의 노력을 기울여 부와 학문을 쌓음으로써 지배계층에 올랐던 서민들이나 중산층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치열한 경쟁으로 자기 힘으로 이 자리에 오른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이전의 학자들처럼 정치세력에 아부하는 비굴한 지식인들이 아니라 무조건의 전제정치를 용납할 수 없었던 절조 있는 지식인들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정치뿐 아니라 모든 일에 있어 절대적인 원리에 입각한 합리적인 방법을 찾으려 했으며, 이 때문에 그들은 모든 현상을 통합하여 설명할 수 있는 절대원리를 찾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한결같이 새로운 유학인 ‘성리학’을 통해 ‘공자-증자-자사-맹자’에게로 전해지다가 한동안 끊어진 유교를 다시 복원 계승함으로써 ‘이기론’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존재론, 즉 ‘절대원리’를 추구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2006-09-22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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