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는 두 사람이 헤어지기 전날 밤 하룻밤을 지새울 때 정표로 퇴계가 써준 정표였다. 그 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죽어 이별은 소리조차 나오지 않고 살아 이별은 슬프기 그지없더라.”
20여년 동안 두향은 얼마나 그 별시를 들여다보고 어루만졌던가. 마치 살아있는 나으리의 육신을 대하듯 두향이는 열자에 불과한 그 문장을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곤 하였던 것이다.
그 시는 날이 샐 무렵 두향이가 전별시를 썼을 때 그 답장으로 나으리가 치마폭에 써 주었던 두보의 시였다. 두향이가 지은 즉흥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찬 자리 팔베개에 어느 잠 하마 오리.
무심히 거울 드니 얼굴만 야위었고야.
백 년을 못 사는 우리 인생
이별만이 더욱 설워라.
(轉輾寒衾夜眠 鏡中憔悴只堪憐 何須相別何須苦 從古人生未百年)”
방 안으로 스며든 월색은 더욱 교교해졌다. 그래서 굳이 촛불에 불을 밝힐 필요가 없음이었다. 두향은 자신이 보낸 치마폭 다른 여백에 새로운 시 한수가 적혀 있음을 발견하였다. 두향은 순간 가슴이 뛰었다. 나으리께서 또 다른 시 한수를 적어 주셨다. 나으리께서는 친히 운필(運筆)하시어 20여년 만에 문안인사를 보내주신 것이다.
두향은 치마폭을 펼쳐 그 내용을 읽어보았다.
“서로 보고 한번 웃은 것 하늘이 허락한 것이었네.
기다려도 오지 않으니 봄날은 다 가려고 하는 구나.(相看一笑天應許 有待不來春欲去)”
예전 그대로의 필체였다. 다소 기력이 떨어지신 듯 붓은 흔들려 필체는 예전보다 가늘어지고 떨린 듯 보였으나 붓놀림은 여전하였다. 그 힘찬 붓놀림을 보자 두향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 피어올랐다.
나으리께서 무사하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으리께서는 무사하시다. 어두운 하늘에서 큰 별이 떨어지는 계속된 흉몽에도 불구하고 나으리께서는 여전하시다. 나으리께서 이승에 무사히 살아계신 것으로 보아 아직까지는 다북쑥 우거진 무덤에 함께 묻힐 때는 아닌 것이다.
그보다도. 두향의 얼굴에 가득 미소가 떠오른 것은 퇴계가 보내온 다음과 같은 시의 내용 때문이었다.
“서로 한번 웃은 것 하늘이 허락한 것이었네.”
2006-07-19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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