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연산군 이후부터 조선 전국에서 농민봉기들이 창궐하기 시작하였던 것은 무능한 관료들과 부패한 양반사회에 대한 어쩔 수 없는 염증 때문이었으나 특히 임꺽정의 난은 몰락한 농민과 백정, 천민들이 규합하여 지배층의 수탈정치에 저항, 전국을 위기에 몰아넣었던 대사건이었던 것이다.
물론 임꺽정이 본격적으로 민란을 일으킨 것은 이듬해인 명종13년(1559년)이었다. 조정에서 파견한 개성의 포도관 이억근(李億根)을 잡아 죽임으로써 한때는 개성까지 점령하였으나 이 무렵 벌써 임꺽정이 일으킨 민란의 불길은 요원(燎原)의 들불처럼 번져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위기감을 이미 두 차례나 명나라의 사신으로 다녀온 정사룡은 하늘이 자연재해를 통하여 군주를 비롯한 인간에게 내리는 경고로 파악하고 이에 대해 ‘어떻게 하면 천지가 제자리에 서고 만물이 잘 자라나게 될 것인가.’라는 준엄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현제판에 걸린 시험문제를 모두 베낀 율곡은 천천히 제자리에 돌아와 앉았다.
뜻밖의 시험문제로 우왕좌왕하고 있는 다른 유생들과는 달리 율곡은 이미 시험문제를 본 순간 집사의 의중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지난 1년간 스승 퇴계를 통해 주자의 성리학에 정진하고 있었던 율곡이었으므로 율곡은 써야 할 답안의 내용이 선명하게 떠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율곡은 잠시 눈을 감고 마음을 안정시켰다. 문장의 내용이 일목요연하게 보였지만 율곡은 심호흡을 하고 써야 할 문장의 첫머리를 궁리해 보았다.
그 무렵 종이는 매우 귀한 것이었으므로 과거시험을 볼 때에는 거자들이 스스로 준비하여 시관으로부터 ‘과거답안지로 인정한다.’는 표시를 받은 종이만을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이러한 표시가 없는 종이에 답안을 작성하면 실격 당하는 것이 당연하였으므로 거자들은 문장이 틀리거나 첨삭할 때에도 다른 종이를 사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문장이 틀리면 붓으로 이를 지우고 다시 고쳐 쓸 수는 있었으나 자연 시험지가 지저분해짐으로써 채점관에게 나쁜 인상을 주어 감점당할 우려가 있었던 것이었다.
차츰 처음의 떠들썩한 소요도 가라앉고 거장 안은 답안을 쓰는 유생들의 정적으로 숙연해졌다. 아침이 지나자 해가 떠서 날씨가 다소 풀려 따뜻해졌다.
율곡이 앉았던 자리의 은행나무 위에서 사금파리 같은 노란은행잎이 떨어져 내렸다.
오랜 침묵 끝에 마침내 율곡은 결심한 듯 눈을 떴다. 그러고는 붓에 먹을 듬뿍 묻혀 종이 위에 답안을 쓰기 시작하였다.
“竊謂萬化之本 一陰陽而已
是氣 動則爲陽 靜則爲陰
一動一靜者 氣也 動之靜之者 理也”
이율곡 일생일대의 최고의 명문장, 천도책은 그렇게 시작된다.
훗날 명나라로 건너가 중국학자들로부터 극찬을 받아 ‘해동의 주자’라고 일컬을 만큼 율곡의 천재성을 드러낸 천도책의 첫 문장이 마침내 시작되었던 것이다.
2006-04-20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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