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제 오로지 이 공안에 대해서 간절한 마음으로 참구할 것이다. 마치 닭이 알을 품은 것처럼, 고양이가 쥐를 잡을 때처럼 굶주린 사람이 밥을 생각하고, 목마른 사람이 물을 생각하듯이 어린애가 어머니를 생각하듯이 거경궁리에 대해서 큰 신심과 분심, 그리고 의심을 품고 고구(考究)할 것이다. 그리고 평생 동안 퇴계 선생을 나의 선지식으로 삼을 것이다.
선지식(善知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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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을 설하여 사람을 불도로 들게 하는 덕이 높은 스님을 가리키는 말로 흔히 화두를 타파하였을 때 이를 인증하여 주는 살아있는 부처를 의미한다. 마찬가지로 스승 퇴계를 유가의 선지식으로 삼아 두고두고 가르침을 얻을 것이다.
율곡의 결심은 그대로 실행에 옮겨진다.
율곡은 의심이 들 때마다 퇴계가 세상을 뜰 때까지 줄곧 편지를 통해 자신의 의문점을 전하고 이에 대한 가르침을 청하고 있다.‘율곡전서’에 의하면 모두 5편.‘퇴계문집’을 보면 모두 7편의 서신이 교환되고 있는데, 총 네 차례 왕복한 서신의 내용을 비교해보면 35세에 보낸 마지막 편지에 이르기까지 율곡의 학문은 점점 더 원숙해지고, 학문적 성숙도는 점차 깊어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를 통해 율곡은 평생 동안 실제로 퇴계를 유가에 있어 선지식으로 생각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첫 번째 서신은 ‘상퇴계선생별지(上退溪先生別紙)’라고 불리며 주로 거경궁리에 대해서 묻고 있는데, 두 사람 사이에 오간 문답은 율곡의 학문적 방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내용으로 손꼽히고 있다.
율곡은 퇴계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내어 자문을 구하고 있다.
율곡은 먼저 주자와 함께 거경궁리를 주창한 송대의 유학자 정자(程子:1037-1107)에 대해서 묻고 있다.
정자는 송나라의 유학을 완성한 주자에게 큰 영향을 준 사람으로 호는 이천(伊川)이다. 초기유학을 흔히 공자와 맹자의 이름을 합쳐서 공맹사상으로 부르듯 송대의 유학, 즉 성리학은 정자와 주자의 이름을 따 정주학(程朱學)으로도 불리는 것이다. 형이었던 정명도(程明道)와 함께 송학의 대가였는데, 불가에 있어 참선을 할 때 좌선법을 사용하듯 유가에 있어 거경궁리란 말을 사용함으로써 성리학의 학문론과 수양론의 골수를 이룬 진보적인 유학자들이었다.
정이천은 평소에 불가에서처럼 정좌를 잘 하는 유학자들을 보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정이천은 ‘정(靜)이라고 말하기만 하면 문득 석씨(釋氏:부처)의 말에 끌려들어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정자는 쓰지 않고 다만 경(敬)자를 썼으니, 정의 편법됨을 염려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하고, 동(動)이건, 정(靜)이건 한결같은 ‘거경’이야말로 유가의 요체임을 주장하였던 것이다.
송 대의 성리학이 불학(佛學)을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신유학 운동이었으므로 정자가 불교의 선법에 대항하기 위해서 ‘거경’의 유교적 선법을 주장하였던 것은 실로 혁명적인 발상이었던 것이다.
2006-03-13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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