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에 미쳤나 낚시에 미쳤지

여자에 미쳤나 낚시에 미쳤지

입력 2005-11-22 00:00
수정 2005-1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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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백번 다행이라는「태공(太公)집」태공의 안주인

남편은 무슨 일이 있어도 1주일에 두 번 이상 낚시질을 다닌다. 그러니까 결혼한지 만 18년이라지만 실상 남편과 산 것은 12년 남짓. 나머지 6년은 붕어에게 남편을 빼앗기고 살아온 한 낚시 미망인이 있다. 이름은 이죽순(李竹順)(43). 낚시에 미쳐 사는 남편 뒷바라지하느라 대폿집을 차렸다. 옥호는『태공(太公)집』 - 강태공을 닮은 남편을 둔 때문이란다.

선볼 때 남편의 첫마디가 “난 낚시에 미친 사람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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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광 조태원씨
낚시광 조태원씨
서울특별시 중구 다동(茶洞) 17 큰 길가에 자리잡은「태공집」문턱을 넘어서면 우선 눈에 띄는 것이 한쪽 벽 가득히 들어찬 어탁(魚拓)(실물 크기의 붕어·잉어 모양을 뜬 것)과 한시(漢詩)들. 그 어탁과 한시들엔 모두 조태원(趙泰元)(54)이란 이름이 적혀 있다. 바로 이 사람이「태공집」마나님의 남편이자 조력(釣歷:낚시경력) 30년의 명조사(名釣士)다.

천안서 태어나 20세 때부터 낚시에 맛을 들이기 시작, 온양서 5, 6년간 낚시점을 경영하다 13년 전에 상경, 종로4가에서 수도(首都)낚시회를 차렸다. 그러나 반도·조선「아케이드」가 생기자 장소를 옮겨「아케이드」낚시회로 이름을 바꿨다. 조씨가 낚시점을 그만둔 건 3년 전 일.

『「플라스틱」낚시대가 나오는 바람에 집어치웠읍죠. 거 뭐 찌나 깻묵이나 팔아선 입에 풀칠도 못하겠더군요』그래서 전재산을 처분, 마나님에게「태공집」을 차려주고 자신은 아예 조태공으로 나앉았다. 낚시 안가는 날은 바둑으로 소일하는 게 낙.

『가게에 붙어있어 보았자 무용지물인 걸요 뭐. 괜히 장사하는데 걸리적 거리기만 하죠』하는 게 태공집 마나님의 말씀. 그런 남편을 둔 게 후회되지 않느냐니까,

『천만에요. 낚시에 미친 게 얼마나 좋아요? 괜히 딴 남자들처럼 여자에 미치는 것보다 골백번 낫죠』하는 게 이 마음씨 너그러운 마나님의 말씀이시다.

이죽순씨가 조태원씨와 결혼한 건 이씨 나이 25세 때. 꼭 얼굴 두 번 보고 결혼식을 올렸단다. 선볼 때 조씨의 첫 마디가『난 낚시에 미친 사람입니다』

결혼 이튿날 눈치 수상해 낚시밥 만들어 주었더니

그러더니 결혼한지 사흘 만에 일요일이 왔다. 그 전날 밤부터「우물쭈물하는 게 아무래도 수상해서」모른 체 부엌에 나가 떡밥(낚시미끼)을 만들어 주었더니 다음날 새벽 온다간다 말도 없이 낚시질 떠나고 없더란다. 이때부터 이씨의 낚시미망인 생활은 시작되었다.『여자가 귀찮아 한다고 집어치울 정도가 아니어서 18년 동안 군소리 한 번 없이』낚시질 뒷바라지를 해왔다.

낚시점을 차렸을 땐「김치 아줌마」로 낚시꾼들 세계에선 소문이 났다. 낚시대회가 있을 때마다 이씨는 큰 항아리 2개에 김치를 듬뿍 담아 보내곤 했는데 이 김치맛이 또한 신선맛. 그래서 낚시터 태공들은 이씨를 가리켜「김치 아줌마」로 불렀다고.

살다보니 떡밥이며 깻묵의 제조법 등 낚시에 필요한 지식은 모조리 갖추게 되었다. 매주 화요일과 토요일 밤은 꼬박 새우다시피 남편의 다음날 낚시준비를 해야 했고. 덕택에 월척(越尺)짜리 붕어나 2척이 넘는 잉어맛은 많이 보았단다. 하지만 이제는 너무 먹어서 물려 버렸다고. 오히려 많이 잡아오는 게 귀찮을 지경.

태공집을 차린 건 꼭 3년 전. 옥호는 물론 딴 내부 장식 대신 어탁과 남편이 쓴 한시로 벽 하나를 채웠다. 그리곤 남편이 잡아온 붕어들을 조려 손님들에게「서비스」술안주로 내놓았다.『붕어조릴 땐 뼈가 녹아버리게 해야 해요. 그러자면 먼저 맹물에 1시간쯤 끓인 뒤 다시 간을 맞추어 조려야지요. 보통은 식초를 쓰는데 그러면 신맛이 나서 못써요』하는 게「태공집」마나님의 붕어 조리비법.

자연히「태공집」엔 낚시를 즐기는 손님들이 단골손님이다. 어떤 이는 낚시회 가입 절차를 물어오는가 하면 심지어 어느 저수지는 어디가 제일 고기 잘 물리는 곳인지 가르쳐 달라고 물어오기도. 이럴 땐「태공집」마나님은「들은 풍월로」아는 대로 정성껏 대답해 준단다. 모르는 것은 남편에게 물어 다음날 알려주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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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태원씨 아내 이죽순씨
조태원씨 아내 이죽순씨


대폿집 벽엔 남편의 어탁과 한시 붙어

제일 우스운 게 낚시 간다고 몇 천원씩 들여 떠났던 손님들이 겨우 송사리 몇 마리 잡아가지고 와선 집에 들어가기 미안하니 붕어 몇 마리 팔라는 것. 이런 손님들이 대개 초심자라는 것쯤은 아는 이 마나님은 남편이 두둑히 잡아 온 붕어들을 무보수로 분양해 준단다. 집에 돌아가 한껏 체면을 세운 그 낚시꾼이 다음날부터「태공집」단골손님이 되어버리는 건 두말할 나위도 없고.

『남편을 따라 몇 번 낚시질도 갔지요. 제일 처음 예당(禮塘)저수지에 갔을 땐 하루종일 겨우 잡은 게 새끼손가락 만한 붕어 두 마리였어요』

「태공집」벽에 붙인 어탁은 모두 7점. 두 자가 넘는 잉어가 셋, 월척 붕어가 네 점이다. 잉어 중 제일 큰 놈은 66년 8월 춘천「댐」에서 잡은 2척(尺) 6촌(寸) 8분(分)짜리. 붕어는 예당서 잡은 1척 3촌짜리가 최고다. 옆에 써붙인 한시들은 모두가 조씨의 자작으로 주제는 낚시. 그 중 2수(首)만 소개하면 -

愛竿一廻投湖時(애간일회투호시)

긴 낚시 한번 휘둘러 호수에 던지니

千憂萬難寸刻消(천우만난촌각소)

온갖 근심이 촌각에 사라지더라

山水絶是迹處江(산수절시적처강)

산수경치 좋은 강가 낚시터에 앉으니

釣樂情攘勝仙境(조락정양승선경)

낚시 즐거움이 仙境(선경)보다 낫구나

낚싯대 메고 온 손님 보면 남편 보는 것 같아 반가와

조씨가 밝히는 바로는『서풍이 살살 불고 기압이 조금 높은 날』이 태공들에겐 가장 바람직한 날씨라고. 그러나 날씨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자리. 그래서 터를 잡는 눈이 곧 조정(釣丁)을 말해 주는 것이라고. 조씨는 아예 예당저수지의 소위 명당 자리에 조대(釣臺) 10여 개를 만들어 두었단다. 호심(湖心)에 나가기 위해 자그마한 배도 한 척 마련해 두고.

『요즈음 젊은 사람들은 낚아 올리는 데만 정신이 팔려 낚시도(道)라는 걸 몰라요. 아무 데나 가서 첨벙거리는 건 옆의 사람에겐 실례가 되거든요』하는 게 명조사 조씨의 말.

『낚싯대 메고 들어오는 손님을 보면 마치 남편을 보는 것 같아 반가와요. 그래 친절히 하다 보면 손님들은 그 친절한 맛에 또 찾아오고요』이건「태공집」마나님의 말씀이다.

이 어울리는 한 쌍의 부부 - 호연지기(浩然之氣)의 남편과 인종지덕(忍從之德)의 아내 사이엔 건강히 자라난 2남 1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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