儒林(369)-제3부 君子有終 제3장 慕古之心

儒林(369)-제3부 君子有終 제3장 慕古之心

입력 2005-06-17 00:00
수정 2005-06-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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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부 君子有終

제3장 慕古之心

이러한 결심은 훗날 제자들이 스승에게 조광조를 주자에 빗대어 물었던 질문에 답변한 퇴계의 내용을 통해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제자 우성전은 어느 날 퇴계에게 다음과 같이 묻는다.

“만일 주자가 기묘년에 임금의 부르심을 받게 되었다면 과연 나아갔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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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성전의 이 질문은 의미심장한 뜻을 내포하고 있다.

기묘년은 바로 조광조가 중종으로부터 사약을 받고 죽은 1519년을 가리키는 말로 기묘사화(己卯士禍)가 일어난 해.

그러므로 우성전은 정암 조광조가 임금의 총애를 받고 개혁을 하다가 마침내 사화 끝에 목숨을 잃은 일이 과연 옳은 것이냐 아니면 어리석은 행동이냐를 묻는 질의였다.

이미 조광조를 비롯한 사림파들을 존경하여 행장기까지 지은 퇴계에게 나아가는 출사(出仕)가 옳은 것이냐 아니면 물러가는 치사(致仕)가 옳은 것이냐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퇴계의 진의를 파악하려는 의도였던 것이다.

특히 우성전은 정암 조광조를 퇴계가 가장 존경하고 있는 주자와 비교하여 감히 질문을 던짐으로써 한 치의 빈틈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제자로서의 결의마저 번득이고 있는 준엄한 질문이었던 것이다. 이에 퇴계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주자는 반드시 나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기묘년, 사람들은 끝에 가서 너무 지나쳐서 몸을 상하게 된 것이다. 정암은 그 잘못을 고치려 했으나 젊은 무리들은 따르지 않았다. 따라서 내 생각으로는 이렇다. 주자로서 그런 때를 당하게 되면 틀림없이 하루도 조정에 있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나가긴 하겠지만 자신의 뜻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를 당하게 되면 틀림없이 하루도 조정에 있지 않을 것이다.’라는 퇴계의 대답은 ‘나의 인생에 있어 나아가고 물러감이 앞과 뒤가 다른 듯하다. 전에는 임금의 명령을 듣기만 하면 곧 달려갔으나 뒤에는 부르시면 반드시 사양하였으며 가더라도 굳이 머무르지 않았다.’는 말과 일치하는 대답인 것이다.

퇴계의 이러한 절대원칙은 죽령 고갯마루위에서 주자를 통해 깨달았던 철칙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죽령은 퇴계에 있어 학문의 화두를 타파한 견성처이자 이(理)의 본자리를 꿰뚫어본 구경(究竟)인 것이다.

퇴계의 이러한 마음은 그가 남긴 한시를 통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명종 21년 서기 1566년.

퇴계는 명종으로부터 공조판서와 홍문관 대제학의 높은 벼슬을 제수 받는다. 이미 50여회의 사퇴원을 제출하였으나 명종으로부터 출사하기를 간곡히 요청하는 부름을 거듭 받자 퇴계는 66세의 나이로 어쩔 수 없이 서울로 가던 중 풍기에서 병을 얻는다.

이때 퇴계는 죽령고개를 넘으며 자신의 심정을 노래하고 있다.

‘병인도병록(丙寅道病錄)’에 실린 이 시는 최근에야 발굴되었는데, 그동안 미공개되었던 이 시의 제목은 ‘이월초육일대풍설(二月初六日大風雪)’.‘이월 초엿새에 눈보라가 몰아치다’라는 뜻의 이 제목은 벼슬에서 물러나기를 간절히 원하는 ‘걸치사(乞致辭)’의 심정이 통절하게 드러나고 있다.
2005-06-17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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