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권력은 지상위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갖기 마련이다. 절대 권력은 인간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어차피 지위가 만드는 것이다. 힘은 인간이 가지는 것이 아니라 그 지위에서 나오는 것이다. 따라서 절대 권력자는 그 지위가 가진 힘의 매력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절대 권력자는 자신이 발휘하는 힘이 절대선이라는 함정 속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가져야 하는 윤리의식과 도덕주의는 태생부터 권력과는 상충되는 것이다.
“법과 정의는 제우스신과 나란히 앉아 있다. 권력을 가진 이가 하는 모든 일, 그것은 그대로 법이고 정의일 수밖에 없다.”
‘플루타르크 영웅전’에 나오는 이 구절은 권력의 속성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는 명언인 것이다.
인류가 낳은 3대 성인 중의 하나인 공자의 현존도 위나라의 영공을 변화시킬 수 없었으며, 노나라의 권신이었던 계씨들에게 정의를 심어주지 못하였다. 하느님의 아들이었던 예수를, 수천 년간 메시아를 기다려온 유대인들이 바로 하느님을 모독한다는 역설적인 죄를 뒤집어씌워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아이러니처럼 위대한 완성자였던 공자의 충고도, 설득도 그 무렵 정치가들의 마음에 전혀 윤리의식을 심어주지는 못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오직 ‘권력을 가진 이가 하는 일이 곧 법이고 정의일 뿐이다.’라고 말한 플루타르크 영웅전의 기록이 오히려 권력의 속성을 드러내고 있는 진리인 것이다.
공자조차 이루지 못한 왕도정치를 그보다 2000년 후에 감히 권력에 접목시키려 하였던 조광조. 그는 어리석은 사람이었던가, 아니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예지자였던가.
예지자라면 비록 실패하였다 하더라도 후세에 깊은 영향을 주어 서서히 세상을 변화시키는 밑거름이 되었어야 할 텐데 조광조의 순교에도 왕조 500년의 권력은 전혀 변화되지 않고 있음이다. 어디 왕조뿐이겠는가.21세기의 오늘날에도 여전히 정치는 권력을 가진 자가 제정하는 법과 정의에 의해서 왜곡되고 있음이니. 권력은 여전히 총구(銃口)에서 나오고, 힘은 여전히 독재에서 출발하고 있음인가.
그에 비하면 이퇴계(李退溪:1501~1570).
조광조보다 불과 18년 늦게 태어난 이퇴계는 같이 공자의 유교사상에 깊은 영향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조광조와는 전혀 그 성격을 달리한다. 조광조가 공자의 정치적 이상을 현실에 접목시키려 하였던 실천적 제자라면 이퇴계는 공자의 말년 6년 동안에 집중된 학문과 사상을 계승발전시킨 동양최고의 학문적 제자이다. 불교가 인도에서 시작되어 당나라의 선종을 거쳐 발전되어 오다가 우리나라가 낳은 최고의 성인, 원효(元曉)에 이르러 불교의 정수가 매듭지어진다. 마찬가지로 유가사상이 2500년 전 중국에서 시작되었으나 유교의 정수도 해동의 이퇴계에 의해서 매듭지어졌으니, 인류사상 최고의 정신문화의 유산인 불교와 유교가 모두 우리나라의 두 거인에게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어찌 우리나라를 변방의 작은 소국이라고 자괴할 수 있을 것인가. 원효와 퇴계를 낳은 세계 최고의 정신문화 선진국. 이퇴계의 위대함은 조광조와는 달리 유가사상에만 전념하여 공자의 사상을 성리학으로 완성하였던 것이다. 퇴계는 평생 동안 79번이나 벼슬자리에서 스스로 사퇴하였다.
본명이 이황(李滉)이었던 그가 퇴계라는 호를 지은 것도 말년에 자신의 고향인 토계( 溪)로 돌아와 마을이름을 퇴계라 고치고 더 이상 벼슬에 연연하지 않고 세상과 완전히 손을 끊겠다는 의지를 논어에 나오는 ‘조정에서 물러나다(退朝)’에서 따온 ‘물러갈 퇴(退)’자를 사용했던 데서 비롯된 것이다.
2005-01-27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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