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을 듣는 순간,밀린 숙제를 마친 초등학생 마음처럼 지난 3년의 세월이 그림처럼 눈앞에 지나갔습니다.
2001년 3월23일 새벽 여자친구의 다급한 목소리,“자기야,지금 엄마가 이달안에 결혼을 하든지,아니면 헤어지라고 난리다.어쩌면 좋아?”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아니고 공인회계사 2차 시험을 불과 몇 달 앞둔 상황이라 8월에 결혼식을 올리겠다고 그렇게 말씀 드렸건만….
여자친구 집으로 가는 30분 동안,‘그냥 차를 집으로 돌리고 헤어질까?’ 갖은 생각을 하다가 ‘그래 말이 안 통하면 내가 데리고 오자.’라는 결심을 하고 여자친구의 집에 갔습니다.“8월에 결혼식 올릴 겁니다.” “안 된다,이 달안에 하든지 아니면 헤어지라.” “못 헤어집니다.시험을 치른 뒤 결혼식을 올릴 겁니다.” “그럼,당장 내 딸을 데리고 가라.”
옥신각신하다가 여자친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니가 결정해라,난 이달에는 결혼식 못한다.어머니 말씀처럼 하려면 여기 남고 아니면 나랑 같이 가자.” 나의 말에 여자친구는 아무런 말없이 가방에 옷가지 몇 개와 책 몇 권을 담고 집앞에 나와서 닫혀버린 문 앞에서 큰절을 하고 내 집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그 다음날 혼인신고를 했습니다.
몇 달 후 2차 시험을 치르고 최종합격을 통보받았을 때 나와 집사람은 서로를 껴안고 한없이 울었습니다.“고맙다,니가 아무 것도 없고 미래도 불확실한 나를 믿어준 그 마음을 평생 잊지 않을게,그 믿음이 나를 시험에 합격하게 한 힘이다.” 무뚝뚝한 경상도 사내놈이 들려줄 수 있는 사랑 고백이었고 나의 평생 다짐이었습니다.
결혼식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마음 한구석에 있었지만,이듬해 우리를 닮은 아들 녀석이 태어나고 초보 회계사 생활을 고향(부산)이 아닌 서울에서 하다 보니 정신없이 2년을 보냈습니다.그리고 지난 4월25일,이같은 긴 여정을 끝내고 임신 3개월의 아내와 마침내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2004-08-19 3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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