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우화] 타조는 타조다

[성인 우화] 타조는 타조다

입력 2004-02-20 00:00
수정 2004-02-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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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은 늘 배가 고팠어.하늘을 날기 위해서는 너무 많이 먹어서 뚱뚱해지면 곤란했거든.무거우면 날 수가 없을 테니까.

‘언제 한번 배가 뽈록 나오게 양껏 먹을 수 있을까?’

그러나 그건 쉬운 일이 아니었어.하늘을 날아다닌다는 것은 참으로 굉장한 일이고,날기 위해서는 끝없이 긴장해야 했기 때문이야.

타조도 다른 새들과 마찬가지였어.아니,다른 새들보다 더했지.몸집이 조금 큰 편인 타조는 어떻게든 몸무게를 줄여야 했어.참으로 고통스러웠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어.나는 것이 서툰 편이기는 했지만 어쨌든 타조도 새인 것이 분명하고,새는 당연히 하늘을 날아야 한다고 모두들 생각했으니까.

어느 날이었지.

“와,신난다!”

먹이를 찾던 타조의 입이 헤 벌어졌어.좋아하는 열매들이 오보록하게 떨어져 있는 구덩이를 발견했거든.

“아이구,맛있어!”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어.너무 배가 고팠고,너무 좋아하는 먹이였기 때문에….

“아함…”

타조는 행복했어.배가 봉긋해진 타조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어.그러다가 몇 걸음도 못가서 그 자리에 우뚝 서 버렸지.

“아이고,내가 지금 걷고 있구나!”

오랜만의 일이었어.날개가 미처 돋기도 전인 아주 어렸을 때를 빼고는 한번도 걸어본 적이 없었지.타조는 아주 기분이 이상해졌어.땅위를 걷는 기분은 뭐랄까,조금 어색하고 그리고 생각보다 편안했지.

타조는 문득 생각했어.

‘나는 왜 지금까지 무조건 날려고만 했을까,이렇게 걸어서 움직여도 되는데?’

머릿속에서는 수많은 목소리들이 나서서 대답을 했지.

‘그걸 말이라고 하니? 넌 새야.’

‘날개가 있기 때문이야.그러니까 날아야지!’

그렇지만 어느 것도 충분한 대답은 아니었어.날개가 있으니까 날아다녀야 한다면,다리가 있으니까 걸어다녀야 한다는 것도 맞는 말이 될 테니까.

이제 타조는 자리잡고 앉아서 골똘히 생각하기 시작했어.

‘나는 걸어다닐 수도 있고,뛰어다닐 수도 있다.어느 것이 더 내게 알맞은,나다운 방법일까?’

여러가지 생각이 머리를 어지럽혔어.

날개를 잘 움직이기 위해서는 근육의 힘을 늘리고 몸무게를 줄여야 했지.그래서 새들은 근육의 구조를 바꾸고 뼛속을 비웠어.쉬운 일이 아니었어.아니,끔찍하리만치 어려운 일이었지.좀더 잘 날기 위해 새들은 대를 이어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셈이었거든.

그런데 오늘,타조는 문득 생각한 거야.

“왜,반드시 ‘다리’를 버리고 ‘날개’를 취해야 하는 거지?”

날아야 한다는 생각만 버리면 우선 먹는 일에서 자유로워질 수가 있을 거야.편안하게 먹고 많이 움직이고….그러면 무턱대고 적게 먹고 기운 없어 하는 것보다 훨씬 건강해질 수도 있겠고.

그리고 또 적들이 오면 다른 동물들처럼 재빨리 달아나면 되지 않겠어?튼튼한 두 다리로 막 달리면 누구도 쉽게 잡을 수는 없을 거야.

타조는 새삼스레 자신의 다리를 내려다 보았어.그러고는 다시 날개로 눈길을 돌렸지.억세고 튼튼한 두 다리,그리고 작은 날개….

“아! 나는 아무 생각없이 습관적으로 날아오르려고 했구나! 새들은 물론 날아다니는 것이지만 내 상황은 조금 다른데….”

타조는 비로소 머릿속이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지.

날이 밝자,타조는 날개를 잘 추슬렀어.그러고는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지.

“아,나는 내식대로 살 테야.무턱대고 날으려고 애쓰느니보다 이렇게 발을 쓰는 게 훨씬 낫겠어.훨씬 건강하게 살아갈 수가 있겠어.물론 나는 새지만,더 자세히 말하면 새 중에서도 타조거든.”

글 이윤희 그림 김세온

파랑새 어린이 ‘뚜벅뚜벅 타조우화’에서

작가의 말

이렇게 말할 수 있는 타조가,남들이야 뭐라든 당당하게 걷기를 선택한 타조가 부럽습니다.정말 부럽습니다.˝
2004-02-20 4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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