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음식에 관한 무지로 당황한 적이 있습니다.시댁과 친정에서 교대로 얻어다 먹는 된장이 마침 떨어졌기에 슈퍼에 가서 작은 된장을 하나 샀습니다.뚜껑을 열어보니 된장 빛깔이 연하면서 입자가 참 곱더군요.“파는 된장은 이렇게 고운가 보네.”하면서 된장을 다시마 우린 물에 풀고 호박·고추·두부를 넣고 끓여 식탁에 올렸죠.그런데 한 숟갈 입에 넣는 순간 뭔가 잘못 됐구나 싶더군요.된장찌개가 이상하게 들척지근한 것이 우리가 아는 된장 맛이 아니었습니다.아차 싶어서 된장을 들고 다시 보니 그건 왜된장이었습니다.
엊그제 경북 김천에 갔는데 그 기억이 나더군요.지인의 부모님이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김천으로 내려가 된장을 만드신다는 얘기를 듣고 된장 구경을 갔거든요.예부터 그 동네가 된장으로 유명했다더군요.음력 정월이면 집집마다 메주 콩 삶아 찌는 냄새가 온 마을에 진동했고요.그분의 홀어머님 역시 겨울이면 메주를 만들어 파시곤 했는데 언제부턴가 콩밭이 과실수 밭으로 바뀌면서 우리 콩이 사라졌답니다.
고향에 내려갈 때마다우리 콩이 사라지고,수입 콩으로 만든 메주가 팔려 나가는 것을 보면서 이게 아닌데 싶으셨던 거죠.
30년 전부터 고향 집 주위의 땅을 조금씩 조금씩 사들여 4만여 평의 땅을 확보하고 전국을 다니며 큼지막한 옹기 항아리를 모았답니다.
그리고 10년 전부터 우리 콩을 구해 시험적으로 된장을 담그기 시작했고요.
같은 50㎏에 우리콩은 15만원이나 하는데 수입콩은 3만원이랍니다.
퇴직 후 본격적으로 머물 집을 마련하고 볕바른 앞 마당에 그동안 모은 옹기 항아리 1000여개를 줄맞춰 놓고,동네 분들의 힘을 빌려 우리 콩으로 만든 ‘김천정월된장’을 만들어 팔기 시작한 게 벌써 4년이 넘었다네요.음력 정월에 콩 삶아 메주 만들어 말리고 장 담가 석 달 후 된장이랑 간장 갈라내고,한두 해 더 묵히니 정성을 꽤 들여야 하는 일입니다.
추운 겨울 밖에서 일하시는 분들을 보고 돌아오면서 저는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사실 그동안은 우리 대(代)에서 ‘맛 나는 된장의 맥이 끊어지겠구나.’하는 생각에 좀 불안했거든요.그렇다고 나라도 꼭 배워서 된장을 직접담가 먹겠다는 용기도 없고,공장에서 매뉴얼대로 나오는 된장을 사먹기는 싫고,아이들에게 그런 된장을 사먹이기는 싫다는,막연한 불만만 키우고 있었으니까요.그런데 이렇게 1500여년 동안 내려오는 방식 그대로,우리 콩을 사용해 된장을 만들어 공급하는 곳이 있다니 얼마나 다행스럽던지요.김천에서 들고 온 된장을 풀어 된장찌개를 끓였습니다.바글바글….맛도 맛이지만 맘이 참 편했습니다.
신혜연 월간 favor편집장
엊그제 경북 김천에 갔는데 그 기억이 나더군요.지인의 부모님이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김천으로 내려가 된장을 만드신다는 얘기를 듣고 된장 구경을 갔거든요.예부터 그 동네가 된장으로 유명했다더군요.음력 정월이면 집집마다 메주 콩 삶아 찌는 냄새가 온 마을에 진동했고요.그분의 홀어머님 역시 겨울이면 메주를 만들어 파시곤 했는데 언제부턴가 콩밭이 과실수 밭으로 바뀌면서 우리 콩이 사라졌답니다.
고향에 내려갈 때마다우리 콩이 사라지고,수입 콩으로 만든 메주가 팔려 나가는 것을 보면서 이게 아닌데 싶으셨던 거죠.
30년 전부터 고향 집 주위의 땅을 조금씩 조금씩 사들여 4만여 평의 땅을 확보하고 전국을 다니며 큼지막한 옹기 항아리를 모았답니다.
그리고 10년 전부터 우리 콩을 구해 시험적으로 된장을 담그기 시작했고요.
같은 50㎏에 우리콩은 15만원이나 하는데 수입콩은 3만원이랍니다.
퇴직 후 본격적으로 머물 집을 마련하고 볕바른 앞 마당에 그동안 모은 옹기 항아리 1000여개를 줄맞춰 놓고,동네 분들의 힘을 빌려 우리 콩으로 만든 ‘김천정월된장’을 만들어 팔기 시작한 게 벌써 4년이 넘었다네요.음력 정월에 콩 삶아 메주 만들어 말리고 장 담가 석 달 후 된장이랑 간장 갈라내고,한두 해 더 묵히니 정성을 꽤 들여야 하는 일입니다.
추운 겨울 밖에서 일하시는 분들을 보고 돌아오면서 저는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사실 그동안은 우리 대(代)에서 ‘맛 나는 된장의 맥이 끊어지겠구나.’하는 생각에 좀 불안했거든요.그렇다고 나라도 꼭 배워서 된장을 직접담가 먹겠다는 용기도 없고,공장에서 매뉴얼대로 나오는 된장을 사먹기는 싫고,아이들에게 그런 된장을 사먹이기는 싫다는,막연한 불만만 키우고 있었으니까요.그런데 이렇게 1500여년 동안 내려오는 방식 그대로,우리 콩을 사용해 된장을 만들어 공급하는 곳이 있다니 얼마나 다행스럽던지요.김천에서 들고 온 된장을 풀어 된장찌개를 끓였습니다.바글바글….맛도 맛이지만 맘이 참 편했습니다.
신혜연 월간 favor편집장
2003-12-17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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