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오일만특파원|“제가 받은 둔황(敦皇)에서의 충격과 희열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간쑤(甘肅)성 둔황의 불교 벽화에 미쳐 둔황 막고굴(莫高窟)에서 7년을 지낸 동양화가 서용(徐勇·사진·41)씨는 9일 베이징에서 열린 둔황 벽화 개인전 소감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베이징의 왕징(望京) 근처 중앙미술학원 미술관에서 개막된 ‘서용,그리고 돈황’ 개인전에서는 중국 불교예술의 정수인 둔황 492개 벽화를 재창조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출품된 50여개의 작품 중 절반은 둔황 벽화를 그대로 재현했고,나머지는 둔황의 원시미와 7년간의 영적 체험을 바탕으로 재창조한 작품들이다.
9m90㎝×2m45㎝ 등 대형 벽화 그림들을 둔황 현지에서 직접 트럭에 싣고 5일간을 달려왔다고 한다.
서씨는 “둔황 명사산(鳴沙山) 모래산에 눈이 내리면 사람을 미치게 하는 무엇이 있습니다.눈덮인 겨울 사막의 길을 걸으면 구도자의 느낌이 절실해지죠.”라고 ‘둔황에서의 7년’을 압축했다.
그는 자신의 둔황 사랑을 “기이한 운명”이라고 표현한다.베이징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 직전인 96년 10월 둔황을 찾았을 당시 그는 베이징 개인전에서 성공적이란 평을 받았지만 내적으로 알 수 없는 공허감에 시달렸다고 한다.“맹목적으로 유행을 좇고 순간성·단일성에 매달려 어거지로 그림을 그리다가 둔황 벽화의 원초적인 힘과 자연적인 편안함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자신의 표현대로 ‘한방 먹은’ 그는 곧바로 둔황 막고굴에서 월 660위안(10만원)짜리 셋집을 얻어 492개 동굴 벽화에 대한 연구에 들어간 동시에 란저우(蘭州)대학에서 둔황학 박사과정도 수료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7년간 갖은 아르바이트도 마다하지 않았던 그를 두고 중국 스승인 쑨징보(孫景波) 중앙미술학원 벽화과 학과장은 “중국의 사막에서 고독과 적막을 벗삼아 모든 정열을 벽화 예술에 바쳤다.”며 치열한 예술혼을 평가했다.
서울대 미대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서씨는 국내 벽화의 대가이자 지도교수이던 이종상(李鍾祥) 전 서울대 박물관장의 영향으로 벽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92년 한·중수교 때중국으로 건너와 중앙미술학원에서 벽화과 석사학위를 받았다.
“경주 석굴암이 실크로드의 종착역같이 느껴진다.”는 서씨는 베이징 전시회에 이어 내년 4월 서울에서 다시 전시회를 열 계획이다.
oilman@
간쑤(甘肅)성 둔황의 불교 벽화에 미쳐 둔황 막고굴(莫高窟)에서 7년을 지낸 동양화가 서용(徐勇·사진·41)씨는 9일 베이징에서 열린 둔황 벽화 개인전 소감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베이징의 왕징(望京) 근처 중앙미술학원 미술관에서 개막된 ‘서용,그리고 돈황’ 개인전에서는 중국 불교예술의 정수인 둔황 492개 벽화를 재창조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출품된 50여개의 작품 중 절반은 둔황 벽화를 그대로 재현했고,나머지는 둔황의 원시미와 7년간의 영적 체험을 바탕으로 재창조한 작품들이다.
9m90㎝×2m45㎝ 등 대형 벽화 그림들을 둔황 현지에서 직접 트럭에 싣고 5일간을 달려왔다고 한다.
서씨는 “둔황 명사산(鳴沙山) 모래산에 눈이 내리면 사람을 미치게 하는 무엇이 있습니다.눈덮인 겨울 사막의 길을 걸으면 구도자의 느낌이 절실해지죠.”라고 ‘둔황에서의 7년’을 압축했다.
그는 자신의 둔황 사랑을 “기이한 운명”이라고 표현한다.베이징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 직전인 96년 10월 둔황을 찾았을 당시 그는 베이징 개인전에서 성공적이란 평을 받았지만 내적으로 알 수 없는 공허감에 시달렸다고 한다.“맹목적으로 유행을 좇고 순간성·단일성에 매달려 어거지로 그림을 그리다가 둔황 벽화의 원초적인 힘과 자연적인 편안함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자신의 표현대로 ‘한방 먹은’ 그는 곧바로 둔황 막고굴에서 월 660위안(10만원)짜리 셋집을 얻어 492개 동굴 벽화에 대한 연구에 들어간 동시에 란저우(蘭州)대학에서 둔황학 박사과정도 수료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7년간 갖은 아르바이트도 마다하지 않았던 그를 두고 중국 스승인 쑨징보(孫景波) 중앙미술학원 벽화과 학과장은 “중국의 사막에서 고독과 적막을 벗삼아 모든 정열을 벽화 예술에 바쳤다.”며 치열한 예술혼을 평가했다.
서울대 미대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서씨는 국내 벽화의 대가이자 지도교수이던 이종상(李鍾祥) 전 서울대 박물관장의 영향으로 벽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92년 한·중수교 때중국으로 건너와 중앙미술학원에서 벽화과 석사학위를 받았다.
“경주 석굴암이 실크로드의 종착역같이 느껴진다.”는 서씨는 베이징 전시회에 이어 내년 4월 서울에서 다시 전시회를 열 계획이다.
oilman@
2003-12-1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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