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지구당 ‘붕괴’ 가능하다

[시론] 지구당 ‘붕괴’ 가능하다

박훈탁 기자 기자
입력 2003-11-26 00:00
수정 2003-11-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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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 김근태 원내대표가 ‘지구당 폐지’가 ‘정치개혁의 핵심’이라고 주장했다.“개인 정치인을 도와주는 사조직 형태로 운영되는 지구당 조직의 근본 틀을 바꾸지 않고는 한국정치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대가를 바라고 움직이는 (지구당)조직을 돈으로 관리하는 현 제도를 폐지하지 않고서는 불투명한 정치자금을 투명하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정곡을 찔렀다.

지구당은 체계적이고 은밀한 ‘매표행위(vote-buying)’의 주범이라는 점에서 정치부패의 온실이다.수십명에서 백여명에 이르는 지구당의 읍면동 협의회장들은 수많은 활동장을 거느리고,그들은 또 무수한 세포조직을 관리한다.조직책(국회의원 또는 지구당위원장)은 이들을 관리하느라 매달 수천만원의 돈을 조달한다.

그런데 범국민정치개혁협의회(정개협)의 위원인 김기식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지구당 폐지가 “입법 면에서 불가능한 얘기”라고 적절하게 지적했다.실제로 지구당 폐지는 가능한 일이 아니다.입법권을 독점한 현역 국회의원들이 지구당 폐지에 찬성할 리 만무하다.지구당 폐지에는 원외 지구당위원장을 포함한 모든 정치지망생들도 반대한다.돈만 있으면 당선을 보장받을 수 있는 지구당 조직을 포기할 리가 없는 것이다.

“돈이 들어가는 구조를 선별해서 금지시켜야 정치개혁의 효과가 있다.”는 주장도 어불성설이다.돈이 들어가는 구조를 전부 선별해 내는 일은 불가능하며,설사 그렇게 하더라도 국회의원들이 그것을 금지하는 법안을 만들고 통과시킬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따라서 선거공영제는 지구당 조직의 ‘매표행위’를 국민 세금으로 보조해 주는 어처구니없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그렇다고 아직 실망하기에는 이르다.

이미 유효한 미시적 대책이 나와 있는 데다 약간의 보완만 한다면 얼마든지 지구당 조직의 체계적 ‘배신’을 유도하여 지구당 ‘붕괴’를 초래할 수 있다.2000년 16대 총선 때 정부가 금품수수를 신고한 사람에게 지급하는 보상금을 1000만원으로까지 늘리면서 선거사범 적발건수가 무려 1400% 증가했다.

정부는 “17대 총선거 후보자로부터 ‘금품을 받거나’,금품을 살포하는 장면을 목격한뒤 신고하면 5000만원 범위내에서 신고금액의 100배에 해당하는 보상금을 지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금품을 받은 사람이 스스로 그 사실을 신고해도 처벌받지 않고 오히려 받은 금품의 100배에 해당하는 보상금을 받는다면 그렇게 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만일 5000만원이라는 보상금 한도를 철폐한다면,선거 때마다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의 자금을 주무르는 지구당의 읍면동 협의회장과 활동장들은 조직책으로부터 자금을 수수한 뒤 그 사실을 신고하여 엄청난 액수의 보상금을 받게 된다.이것은 곧 지구당 조직의 붕괴를 의미한다.

기득권 사수에 여념이 없는 국회나,이러한 국회가 만든 제도가 유효한 개혁안을 제시하거나 수용할 것이라는 기대는 아예 하지 말아야 한다.정부의 시행령으로도 상당한 수준의 개혁을 이끌어낼 수 있다.국회는 개혁이 현실로 나타나야만 개혁에 승복하는 시늉이라도 할 것이다.이제 남은 일은 이 새로운 제도의 존재를 널리 알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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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훈 탁 위덕대 교수·국제관계학 명예논설위원
2003-11-26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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