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 사라져 가는 목소리들

책 / 사라져 가는 목소리들

입력 2003-11-05 00:00
수정 2003-1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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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얼 네틀·수전 로메인 지음 / 김정화 옮김 이제이북스 펴냄

●오스트레일리아 토착어 250여개 없어져

그 많던 언어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200여년 전 영국의 제임스 쿡 선장이 처음 오스트레일리아에 발을 디딘 이래 지금까지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이 사용하던 250여개의 토착어가 종적을 감췄다.미국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사용하던 100여종의 토착어도 지금은 모두 사라졌다.알래스카 코르도바 지역에 살던 에야크족 인디언 마리 스미스는 에야크어의 마지막 사용자이자 최후의 추장이었다.언어학자들은 현재 지구상에는 약 5000개에서 6700개의 언어가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그 중 90%는 21세기를 지나는 동안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지난 500년 동안 우리에게 알려진 언어 가운데 절반 가량이 이미 사라졌다.에트루리아어·수메르어·이집트어 등 고대제국의 언어들은 수백년 전에 소멸했다.사람들은 멸종 위기에 처한 생물종이나 환경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보이면서 언어가 사라지는 것에 대해서는 왜 무신경할까.언어의 사멸은 무엇보다잔인한 인류의 재앙이다.

‘사라져 가는 목소리들’(대니얼 네틀·수전 로메인 지음,김정화 옮김,이제이북스 펴냄)은 세계의 다양한 언어들의 소멸 위기를 경고하고 그 대책을 모색해보는 책이다.언어의 사멸은 고대제국이나 낙후된 오지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그것은 바로 지금 우리 눈앞에서,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위대한 문학을 낳은 아일랜드어의 쇠락은 하나의 경종이 될 만하다.기원후 1000년경까지만 해도 아일랜드어는 공격적으로 확산돼 가던 언어였다.아일랜드어는 유럽에서 라틴어와 그리스어 다음으로 오래된 문헌을 갖고 있는 유서깊은 언어다.그러나 아일랜드어는 지금은 일부 시골 농부들의 언어로 전락해 시들어가고 있다.1990년 당시 한 추산에 따르면 아이들에게 전해줄 만큼 애착을 갖고 아일랜드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9000명에도 못미친다.젊은 세대에 전해지지 않는 언어는 결국 죽고만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구전돼 오던 지식들마저 사라지고

저자들이 언어의 사멸에 주목하는 것은 언어가 단순한 의사소통의 수단을 넘어세계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인식의 창이기 때문이다.집단은 언어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낸다.언어가 사라진다는 것은 그 언어를 사용하는 집단의 존재가 없어지는 것이며 나아가 인류가 쌓아온 지식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태평양 팔라우섬의 어부들은 수백종의 물고기 이름과 서식지,숱한 어종들의 산란 주기를 알고 있다.북극 지역에 사는 이누이트족은 어떤 종류의 얼음과 눈이 사람과 개,카약의 무게를 지탱할 수 있는가를 파악하기 위해 얼음과 눈의 강도에 따라 각각 다른 이름을 붙였다.필리핀 민도로 섬의 하우누족은 450종 이상의 동물과 1500여종의 식물을 구별할 수 있다.그러나 불행하게도 수천년 동안 구전돼 오던 이 실천적인 지식들은 그들의 언어가 사라지면서 점차 망각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세계의 소수언어를 사라지게 한 데는 유럽제국의 확산과 정복의 물결이 한몫 했다.지난 500년간 유럽인들은 아메리카 대륙과 오세아니아의 여러 섬들을 점령하면서 전염병을 퍼뜨리고 학살을 자행했다.유럽에서 전파된 전염병으로 아메리카 원주민의 95%가 죽었고,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은 유럽인과 접촉한 지 100년 만에 인구의 3분의1이 천연두로 사망했다.유럽인들의 원주민 집단학살과 전염병 전파,언어의 이식 등은 토착지역의 언어적 다양성을 뿌리째 뽑아버렸다.1860년대 러시아가 카프카스를 점령하면서 벌인 대학살 이후 우비크어가 급격히 쇠퇴한 것이 그 대표적인 예다.체첸이나 쿠르드족은 지금도 러시아와 터키의 억압정책으로 삶의 위기에 봉착해 있으며 그들의 언어 또한 마찬가지다.

●한국어의 미래도 밝지만은 않아

언어의 죽음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인류학자인 저자들은 언어와 지역생태계를 보존하면서 원주민들이 경제적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그것은 바로 지역생태계의 자원을 통제할 권리를 원주민 자신에게 주는 것이다.언어를 사용하는 집단이 안정돼 그들이 가정과 사회에서 자신의 말을 써야 비로소 언어의 보전이 가능하다.

그러면 우리 말의 운명은? 한국어는 7000만명이 사용하는 말로 사용자 수로만 보면 세계 15대 언어 안에 든다.그러나 일부에서 영어공용화론이 제기되는 등 한국어의 미래는 밝지만은 않다.이 책에 나오는 한 아메리카 원주민의 말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이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백인들의 말을 알아야 한다.그러나 영원히 살아남으려면 우리 말을 알아야 한다.” 우리로서도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1만 8000원.

김종면기자 jmkim@
2003-11-05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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