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첫서리

[씨줄날줄] 첫서리

정인학 기자 기자
입력 2003-09-24 00:00
수정 2003-09-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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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강원도 산간에는 올가을 들어 첫서리가 내렸을 것이라고 한다.기상청이 추분 날 아침에 첫서리를 예보했던 까닭이다.산에 올라 서리를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서리가 내렸을 것이란다.기온이 3℃ 이하로 내려가고 지온은 0℃이하로 떨어지면 서리가 내리니 틀림없다는 것이다.광풍을 휘몰아온 태풍이 떠난 빈자리를 이번엔 쌀쌀한 기운이 차지하고 들었다.한 시절이 가고 또 다른 시절이 다가오고 있다는 예고일 것이다.

서리는 어려운 시절을 말해준다.봄날과 함께 사라졌다가 여름이 끝나면서 가을과 함께 얼굴을 내미는 불청객이 아닌가.서리는 내리는 시기나 성상에 따라 이름을 달리한다.늦겨울에 시작된 초봄 서리는 입춘으로 88일째 되는 날 밤에 마지막으로 내린다 해서 ‘88야(夜) 이별 서리’라고 부른다.가을 초입에 내리는 첫서리는 대개 무서리다.공기 중의 서리 입자가 희박한 묽은 서리라는 말이다.가을이 깊어지면 서리는 된서리로 변한다.눈보라 휘몰아치는 시련의 엄동설한이 멀지 않았음을 경고하는 것이다.

가을은 오행으로 보면 쇠 금(金)에해당한다.쇠는 차갑고 싸늘한 논리를 좇는 냉정한 속성을 가진다고 한다.쇠는 또 강해서 역경을 딛고 뜻을 이뤄낸다고 한다.역학에선 금의 오행을 타고 나면 훌륭한 과학자나 학자가 된다고 판단한다.어려움을 이겨낸 입지전적인 인물이 많다고 얘기한다.올가을엔 세상이 가을의 이치를 닮았으면 좋겠다.상대에 대한 적대감을 훌훌 털어 버리고 냉정한 이성을 되찾아야 한다.개인적 콤플렉스라면 극복해내는 의지를 추슬러야 한다.싸늘한 냉정이 가을 본래의 기운인 까닭이다.

세상은 요즘 문제 해결 능력을 잃어 가고 있는 것 같다.전북 부안에선 벌써 한 달째 초·중·고교의 수업이 무산되고 있다.추석 연휴에 태풍이 예고되었지만 고스란히 앉아서 당했다.서울의 사패산 터널 문제가 불거진 지가 언제인데 이제야 공론 조사를 시작한다고 한다.교육부가 판교 학원 단지 계획에 반대의 뜻을 밝히는데 무려 1년이 걸렸다.첫서리는 곧 된서리가 내린다는 경고일 것이다.가을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면 혹독한 겨울을 맞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올가을엔 사람들이 정신 좀 차렸으면 좋겠다.

정인학 논설위원

2003-09-24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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