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가 화두다.그런데 도무지 그 길과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노무현 대통령은 2만달러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국가와 사회를 개조하고,우리의 사고와 행동양식을 바꾸어야 한다.’고 강조한다.두 주요 재벌 회장들도 ‘천재를 길러야 한다.’‘훌륭한 리더를 육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 사람의 주장에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새로운 동력을 찾지 않으면 더이상 나갈 수 없음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마찬가지다.동력이 바로 사람이고 교육이다.그래서 교육개혁이 이 시대의 또 다른 화두다.급하다.급하지만 실을 바늘허리에 매어 바느질할 수는 없다.교육위기에 대한 진단이 정확해야 하고 교육개혁 목표가 명확해야 한다.
교육개혁을 추진할 교육혁신위원회는 신자유주의니 사회민주주의니 하는 어설픈 이념 공방이나 탁상공론으로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개혁강박증이나 어른들의 논리에 매몰되어서도 안 된다.무엇보다 교육의 중심에 있는 학생들의 시각으로 교육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안타깝게도 대학 1학년인 한 학생의 ‘12년간의 초·중등교육에 대한 소회’는 이러했다.“초등학교 5학년 담임선생님에 대한 좋은 기억 외에 12년 동안의 학창시절은 나에게 어떤 특별한 의미도 없다.‘학생’이라는 신분은 좋았지만 ‘학교’라는 공간에는 거부감마저 들었다.이름뿐인 상담실,공부 외에는 접촉이 없는 선생님,경쟁자로 서로를 인식해야 하는 친구들,커다란 학교 좁은 교실 안의 터질 듯한 불만은 대학입시 아래 침묵해야만 했다.고교 시절로 돌아가 무엇을 하고 싶으냐고 누가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말할 것이다.‘자퇴서를 쓰고 당당히 걸어 나와 나의 개성을 되찾을 것’이라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러한 기억이 이 학생만의 특별한 경험이나 생각이 아님을 우리는 안다.어른들은 꽤 열심히 교육시킨다고 애썼는데 학생들은 다른 세상에 있었나 보다.그렇다.그들이 머무른 교실에는 최첨단 컴퓨터도,빔 프로젝트도 있지만 거기에는 미래의 꿈과 각자의 개성이 없었고,학생들도 함께 있었다거나 공동체가 아니었다.
과거형 교실을 해체하지 않았고,미래형 학교를 창조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교육 붕괴’가 온 것이다.교육위기의 실체는 ‘학교에 대한 신뢰와 교사에 대한 존경 그리고 학생들의 학습 의욕’저하다.따라서 교육개혁의 목표는 학교가 학생들에게 미래를 준비하는 의미 있고 유익한 ‘배움의 공동체’로 재구축해 주는 것이다.공생의 원리를 배우는 장,문제해결 능력과 적응력을 높이는 장,‘나의 미래’와 ‘넓은 세상’을 만나는 곳이어야 한다.
지금까지의 교육개혁은 거창한 구호와 근사한 이론에서 출발했다.그래서 불안했다.국민의 지지를 얻기보다 학교 현장의 혼란을 가중시키는 경우가 더 많았다.교육개혁은 학교개혁이고,교실개혁이며,수업혁신이다.교육개혁의 시작과 완성은 교사의 수업 혁신에 대한 확고한 의지와 실천에 달려 있다.
교육개혁을 위한 모든 제도 개선과 법령 정비,예산 편성과 여건 조성은 교사의 수업혁신에 맞추어야 하고 교과서 정책,교원 정책,교육과정 정책,교육자치 정책 등도 이 궤도를 이탈해서는 안 된다.그런데 교육개혁의 최대 장애물이 있다.교육공동체간의 상호 불신과 반목이고,그중에서도 교단의 갈등과 대립이다.
교원 집단들이 서로 반목하고 분열하여 동료의식이 결여되면 교사에 의한 자주적인 교육 개혁은 기대하기 어렵고,아무리 좋은 교육개혁 프로그램도 현장 착근이 불가능하다.교원단체들간의 갈등은 교무실 내의 갈등으로 이어지고,학교내의 분열이 고착화하면 학교개혁은 불가능하다.
최근 정부와 교원단체,시민단체간의 물고물리며 이어지는 고소·고발 사건들을 들먹이지 않더라도,‘교무실 붕괴’가 ‘학교 붕괴’로 이어지는 사례는 수없이 많다.더욱이 교사들간의 이해나 의견이 상충되거나 대립할 때 무시되고 방치되는 것이 학생의 목소리와 수업권이다.교단의 갈등이 하루빨리 해소돼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정부의 교단갈등 해소 대책은 교육개혁 성공의 전제조건이자 필수조건이다.이것부터 서둘러야 한다.
학교는 어른들의 각축장이 아니라 학생들의 경연장이다.‘한 명의 뛰어난 천재’‘10명의 유능한 CEO’,그리고 그들과 조화를 이룰 ‘99명의 성실한 일꾼’을 모두 길러내는 교사의 전문성과 책무성이 또한이 시대의 화두다.
남승희 명지전문대교수 명예논설위원
세 사람의 주장에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새로운 동력을 찾지 않으면 더이상 나갈 수 없음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마찬가지다.동력이 바로 사람이고 교육이다.그래서 교육개혁이 이 시대의 또 다른 화두다.급하다.급하지만 실을 바늘허리에 매어 바느질할 수는 없다.교육위기에 대한 진단이 정확해야 하고 교육개혁 목표가 명확해야 한다.
교육개혁을 추진할 교육혁신위원회는 신자유주의니 사회민주주의니 하는 어설픈 이념 공방이나 탁상공론으로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개혁강박증이나 어른들의 논리에 매몰되어서도 안 된다.무엇보다 교육의 중심에 있는 학생들의 시각으로 교육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안타깝게도 대학 1학년인 한 학생의 ‘12년간의 초·중등교육에 대한 소회’는 이러했다.“초등학교 5학년 담임선생님에 대한 좋은 기억 외에 12년 동안의 학창시절은 나에게 어떤 특별한 의미도 없다.‘학생’이라는 신분은 좋았지만 ‘학교’라는 공간에는 거부감마저 들었다.이름뿐인 상담실,공부 외에는 접촉이 없는 선생님,경쟁자로 서로를 인식해야 하는 친구들,커다란 학교 좁은 교실 안의 터질 듯한 불만은 대학입시 아래 침묵해야만 했다.고교 시절로 돌아가 무엇을 하고 싶으냐고 누가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말할 것이다.‘자퇴서를 쓰고 당당히 걸어 나와 나의 개성을 되찾을 것’이라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러한 기억이 이 학생만의 특별한 경험이나 생각이 아님을 우리는 안다.어른들은 꽤 열심히 교육시킨다고 애썼는데 학생들은 다른 세상에 있었나 보다.그렇다.그들이 머무른 교실에는 최첨단 컴퓨터도,빔 프로젝트도 있지만 거기에는 미래의 꿈과 각자의 개성이 없었고,학생들도 함께 있었다거나 공동체가 아니었다.
과거형 교실을 해체하지 않았고,미래형 학교를 창조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교육 붕괴’가 온 것이다.교육위기의 실체는 ‘학교에 대한 신뢰와 교사에 대한 존경 그리고 학생들의 학습 의욕’저하다.따라서 교육개혁의 목표는 학교가 학생들에게 미래를 준비하는 의미 있고 유익한 ‘배움의 공동체’로 재구축해 주는 것이다.공생의 원리를 배우는 장,문제해결 능력과 적응력을 높이는 장,‘나의 미래’와 ‘넓은 세상’을 만나는 곳이어야 한다.
지금까지의 교육개혁은 거창한 구호와 근사한 이론에서 출발했다.그래서 불안했다.국민의 지지를 얻기보다 학교 현장의 혼란을 가중시키는 경우가 더 많았다.교육개혁은 학교개혁이고,교실개혁이며,수업혁신이다.교육개혁의 시작과 완성은 교사의 수업 혁신에 대한 확고한 의지와 실천에 달려 있다.
교육개혁을 위한 모든 제도 개선과 법령 정비,예산 편성과 여건 조성은 교사의 수업혁신에 맞추어야 하고 교과서 정책,교원 정책,교육과정 정책,교육자치 정책 등도 이 궤도를 이탈해서는 안 된다.그런데 교육개혁의 최대 장애물이 있다.교육공동체간의 상호 불신과 반목이고,그중에서도 교단의 갈등과 대립이다.
교원 집단들이 서로 반목하고 분열하여 동료의식이 결여되면 교사에 의한 자주적인 교육 개혁은 기대하기 어렵고,아무리 좋은 교육개혁 프로그램도 현장 착근이 불가능하다.교원단체들간의 갈등은 교무실 내의 갈등으로 이어지고,학교내의 분열이 고착화하면 학교개혁은 불가능하다.
최근 정부와 교원단체,시민단체간의 물고물리며 이어지는 고소·고발 사건들을 들먹이지 않더라도,‘교무실 붕괴’가 ‘학교 붕괴’로 이어지는 사례는 수없이 많다.더욱이 교사들간의 이해나 의견이 상충되거나 대립할 때 무시되고 방치되는 것이 학생의 목소리와 수업권이다.교단의 갈등이 하루빨리 해소돼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정부의 교단갈등 해소 대책은 교육개혁 성공의 전제조건이자 필수조건이다.이것부터 서둘러야 한다.
학교는 어른들의 각축장이 아니라 학생들의 경연장이다.‘한 명의 뛰어난 천재’‘10명의 유능한 CEO’,그리고 그들과 조화를 이룰 ‘99명의 성실한 일꾼’을 모두 길러내는 교사의 전문성과 책무성이 또한이 시대의 화두다.
남승희 명지전문대교수 명예논설위원
2003-07-17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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