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책임총리제 허상서 벗어나자

[열린세상] 책임총리제 허상서 벗어나자

권영설 기자 기자
입력 2003-06-11 00:00
수정 2003-06-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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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학자 출신의 전직 총리 한 분이 6년 전,당시 신한국당 대통령 후보 경선 과정에서 ‘책임총리론’을 제기한 바 있다.실현성은 차치하고 헌법 법리에도 맞지 않아 사라질 줄 알았던 이 용어와 개념에 노무현 후보가 다시 불을 지폈다.선거 공약이었고 당선 이후에도 몇 차례 그 시행을 약속해 기대를 부풀리더니,뒤늦게 고건 총리까지 ‘악역 자청’과 ‘시어머니 역할론’으로 거드는 체하고 있다.더욱 우스꽝스러운 것은 한나라당 대표 후보자들마저 남의 장단에 춤추고 있는 광경이다.결론부터 미리 밝히거니와 책임총리제란 없다.그저 헌정의 신기루를 띄우고 있을 뿐이다.

대통령과 부통령에다 국무총리까지 둔 건국 초기의 정부형태는 분명 기이한 제도임이 틀림없다.그 뒤 부통령을 뺀 국무총리제마저도 40년 넘게 운영해왔다.상해 임정에 뿌리를 둔 이 총리제도가 좋든 싫든 이제 익숙한 제도로 자리매김했다.더구나 남북 관계의 특수성에 비추어 필요에 따라 양측은 정부 대표자로 이를 활용했고 앞으로 효용도 남아 있다고 할 것이다.총리라는 직명이 서로 같기 때문이다.문제는 근본적으로 종류가 다른 정부형태의 직제에 붙여진 이름이 공교롭게도 모두 국무총리인 까닭에 혼란은 피할 길이 없게 된다.이를테면 지난날 장면(張勉) 총리와 오늘의 고건 총리가 지위와 권한에 있어 같을 수 없지만 직명은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일반 시사 용어이든 전문 학술 용어이든 어느 경우에나 대통령제만 있을 뿐이다.대통령‘중심’제 라는 낱말은 건국 초기 이승만정부 때 관용화되기 시작한 한국식 명명(命名)일 뿐이다.어떤 분은 우리 정치의 혼란을 ‘대통령 무책임제’에서 찾기도 하나,그 지적이 맞고 틀리고를 떠나 무책임한 용어 선택일 것이다.논리상 그런 제도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대통령제와 내각책임제의 본질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귀결된다.대통령제의 성립이 국회에 의존하지 않을 뿐더러 임기제가 대통령제의 기본 요체인 이상 대통령 책임제란 있을 수 없는 개념이다.

여기서 ‘책임’은 일반적 의미의 책임이 아니다.그런 책임이야 어느 나라 어떤 제도인들 없겠는가.모름지기 정부 제도에 붙여진 이름으로서 책임은 오직 의회에 대한 책임만을 가리킨다.내각 불신임에 대응된 ‘내각 총사퇴’가 대표적으로 책임지는 방식인 바,의원내각제의 또 다른 이름이 내각책임제임은 바로 이를 가리킨다.이때 그 같은 책임의 실현이 가능하고 필요한 것은 임기제가 아니기 때문임은 물론이다.바로 이 본질적 차이가 이와 대통령제를 구별하는 가늠자라 하겠다.

이른바 책임 총리제의 실현 방법을 크게 보아 두 갈래로 설명한다.그 하나는 대통령은 통일,외교,국방 및 특별 국정과제에 전념하고,기타를 총리에게 맡긴다는 것이다.또 국무위원 임명 제청권과 해임 건의권을 실질화한다는 것이 다른 하나이다.국가 정책이 줄 긋듯이 내정·외정으로 구별될 수도 없거니와 현행 헌법 아래에서 대통령의 권한과 정치적 책임은 전적으로 오직 그의 몫일 뿐이다.더구나 내년부터 다수당이라면 야당에 총리직을 준다는 것인 바,현실적으로 여야의 구별도 없어지거니와 그 이전에 헌법 제도의 그 같은 왜곡을 지난 대통령 선거를 통해 국민이 수권(授權)한 바 없음에 주목해야겠다.제청권은 단순한 추천권을 의미한다.그것이나 건의권이나 대통령을 구속할 수 없음은 마찬가지다.더구나 이 정부는 장관의 인터넷 국민 추천까지 실시한 바 있으니 총리 권한의 강화와는 어긋난다.

요컨대 왜 부통령이라는 혹을 떼고 총리를 두는가.임기가 확실히 보장된 부통령은 시간의 경과와 더불어 고양이로부터 호랑이가 될 수도 있다.어느 때라도 교체 가능한 총리야말로 호랑이일 수가 없는 것이다.바로 여기서 책임 총리제의 허실이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현행 총리제도 그 효용이 끝난 것도 아니며 없는 것은 더욱 아니다.현재의 남북 관계에 비추어서는 더욱더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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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영 설 중앙대 교수 헌법학
2003-06-11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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