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욕 서린 건물도 문화재 등록

치욕 서린 건물도 문화재 등록

입력 2003-05-01 00:00
수정 2003-05-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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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 노근리 쌍굴다리와 옥천 죽향초등학교,진천의 옛 덕산양조장,김제의 농장사무실….

문화재청이 지난주 문화재로 등록을 예고한 15건의 근대 문화유산 가운데 일부이다.

조금 과장하면 노근리 쌍굴다리는 그야말로 볼품없는 콘크리트 덩어리.그러나 잘 알려진 대로 한국전쟁 당시 수백명의 민간인이 피살된 곳이다.

죽향초등학교와 덕산양조장은 건축적 가치도 있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의 부인 육영수 여사가 다녔고,현재도 3대가 가업을 이어 전통주를 생산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

김제의 농장사무실은 일본인에 의한 토지수탈의 역사를 간직한 건물로 조정래의 대하소설 ‘아리랑’의 무대로 등장하기도 했다.

그동안에는 건조물이 얼마나 ‘건축적 가치’를 갖고 있는지가 문화재로 등록되는데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면,이제는 ‘역사’가 전면에 부상하고 있다.

무엇보다 치욕의 역사와 부정적인 역사도 간직해서 후세에 물려주어야 할 문화 유산으로 과감하게 수용하고 있다는 데서 등록 문화재 제도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경성부청사였던 서울시청청사.경복궁안에 있던 일(日)자모양의 옛 조선총독부청사는 헐렸지만,본(本)자 모양으로 짝을 이루던 옛 경성부청사는 등록문화재로 보존하게 된다.

일본사찰인 군산의 금강사 대웅전도 포함됐다.1913년 일본에서 건축자재를 들여와 지은 전형적인 에도(江戶)시대 사찰건축을 보여준다.제천기관차사무소 수검고가 등록 대상으로 예고된 것도 눈길을 끈다.1937년 철근콘크리트로 지어진 뒤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오폭으로 남쪽 부분이 파괴되자 외장을 벽돌로 쌓아 복구했다.건축물로는 순수성을 잃어버렸지만,근현대사의 굴곡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문화재적 가치는 더 크다는 것이다.

김정동 문화재위원(목원대 건축학과 교수)은 “이런 것까지 문화재로 등록해야 하느냐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면서 “그러나 좋은 역사만 역사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시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무엇보다 이런저런 의미를 부여하려고 해도 남아 있는 근대문화유산 자체가 별로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라면서 “문화재로 등록하여 당시의 흔적이나마 남겨놓을 수 있는 제도가 있다는 것이 다행스럽다.”고 말했다.

등록 문화재 제도는 1876년 개항 이후 한국전쟁에 이르는 동안 만들어진 근대문화유산을 효율적으로 보존하고자 지난해 3월 도입됐다.현재까지 서울 태평로 옛 국회의사당과 강경 남일리 옛 남일당한약방 등 모두 66건이 등록되거나,등록이 예고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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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철기자 dcsuh@
2003-05-01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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