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홍길동 같은 사람’‘동사무소·면사무소의 서류작성 견본과 이름표 샘플에 가장 빈번하게 인용되고 있는 인물 홍길동…’ 아마도 이땅에서 태어난 남자라면 걸음마 시절부터 평생 귀가 따갑도록 듣게 되는 이름이 홍길동일 것이다.그만큼 우리네 삶 속에 홍길동은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그 주인공의 출신지는 그의 화려한 명성만큼이나 지방자치단체들간에 논란이 뜨겁다.강원도 강릉시측은 소설 홍길동의 작가 허균이 자기네 고장 출신이라 당연히 강릉이 홍길동의 ‘정신적 고향’이라는 입장이다.반면 전남 장성군은 실존 인물이 자기네 지역에 살았다고 강하게 주장한다.신출귀몰하는 홍길동의 원조 논쟁을 들여다본다.
◈강원 강릉시
홍길동이 등장하는 소설 ‘홍길동전’이 강릉에서 태동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더욱이 홍길동전이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소설로 조선중기의 혼란했던 사회상과 계급제도를 적나라하게 꼬집었던 개혁소설이라는 것도 아는 이가 드물다.
이같이 홍길동이 소설 속에서 태어난 강릉시 초당동 울창한 소나무숲에는 작가 허균(許筠,1569∼1618)의 생가가 잘 보존돼 있다.허균이 태어난 외갓집 애일당 터도 강릉시 사천면에 남아 지금은 시비가 세워져 있다.강릉시가 홍길동의 원조를 주장하는 대목이다.
홍길동은 홍길동전에서 태어났고 작가 허균이 자신의 강릉 집에서 집필했으니 당연히 강릉시가 홍길동의 ‘정신적 고향’이라는 논리다.홍길동전은 집필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작가의 개혁적인 성품도 소설 속에 고스란히 배어 있어 관심을 더한다.
쇠락의 징조를 보이던 선조와 광해군 시대 조선중기의 혼란스러운 사회상과 침울한 계급의 속박 속에 백성들의 불만이 어떠했는지 적나라하게 묘사되고 있다.이러한 어지러운 사회를 홍길동이라는 신출귀몰한 주인공을 내세워 통쾌하게 복수를 한다는 내용으로 소설이 구성돼 있다.
허균의 성향도 개혁적이다.불과 아홉살에 시를 짓고 문학에 탁월한 재능을 보이며,26세에 벼슬길에 올랐으나 역모를 꾀한 죄인으로 몰려 50세에 처형당하는 비운의 생을 마쳤다.
사회제도의 모순과 정치적부패상을 질타하고,개혁을 주창하는 등 실천적 삶을 살다 정치적인 음해로 인하여 목숨을 잃게 된다.개혁적인 정치사상가,국방 이론가,진보적 종교가,문학가 등 허균의 이름에 붙는 수식어는 그만큼 다양하다.
강릉시는 해마다 9월이면 허균과 누이동생 허난설헌을 기리는 ‘허균·허난설헌 문화제’를 열고 있다.
백일장과 그림그리기 대회,시 낭송회 등 다채롭고 전통적인 문학 축제로 열리고 있다.
강릉에서 태어난 허균과 홍길동을 널리 알려 시민들에게는 전통문학의 고향이라는 긍지를 심어주고,외지인에게는 전통의 도시를 알리겠다는 복안이기도 하다.소설 속의 홍길동이 문화제를 통해 강릉에서 다시 부활하고 있는 이유다.
강릉 조한종기자 bell21@kdaily.com
정호돈 강릉문화원장
★정호돈 강릉문화원장
교산(蛟山) 허균 선생은 혼란한 선조∼광해군 때의 조선시대 중기에 활동했던 정치가이자 작가다.
나라 안에는 임진왜란을 치른 뒤 봉건체제가 뿌리부터 흔들려 새로운 움직임이 나타났고,당쟁은 더욱 굳어져 파당을 이루던 시절을 살던 사람이다.명문 집안에서 태어난 선생은 유교와 문장을 숭상하던 사회에 반기를 들고 당시 언문으로 천대받던 한글소설 홍길동전을 쓴 인물로 한국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선생은 또 성리학의 이론뿐 아니라 불교와 도교에 심취하며,학문의 깊이와 폭을 넓히는 등 획일화된 당시 사회에서 여러 사상을 포용하는 넓은 안목을 지니기도 했다.
이같은 선생의 뜻을 기리기 위해 강릉시는 4년전부터 지역문화의 계승,지역인물의 선양,지역정신의 창조라는 목표 아래 ‘허균·허난설헌 문화제’를 열고 있다.해마다 9월 중순쯤 여는 문화제는 허균선생 추모제를 비롯해 홍길동 만화그리기,홍길동 창작 탈 만들기,(관노)탈춤추기 등 다채로운 행사가 열린다.강릉시를 대표하는 문학인과 작품 홍길동전을 위해 강릉시는 캐릭터를 만들어 활용하고 학자 중심으로 허균·허난설헌 선양회를 구성해 지역문화의 정신세계를 풍요롭게 하고 있다.
◈전남 장성군
소설 속의 주인공 홍길동이 지난 97년부터 뭇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장성군은 그 해 강릉에서 소설 ‘홍길동전’의 작가인 허균의 고향임을 내세워 연고권을 선언하자 즉각 반격했다.마침 서울방송에서도 드라마 ‘홍길동’을 방영하면서 홍길동 캐릭터를 개발한다는 소식에 장성주민들이 방송국으로 몰려가 항의했다.
2000년에는 연극인 윤모씨가 ‘돌아온 영웅 홍길동’이라는 만화영화를 극장용으로 상영하면서 ‘홍길동’을 상표(15개)로 등록하자 취소 소송을 내는 등 지적재산권 분쟁으로 치달았다.이제는 장성군이 홍길동 캐릭터에 대한 소유권자로 인정받고 있다.
내친김에 장성군은 97년 연세대 국학원에 용역조사를 맡겨 홍길동에 대한 체계적인 고증작업을 마쳤다.
이 조사에서 홍길동은 1446년(세종) 장성군 황룡면 아곡리 아치실 마을에서 이곳으로 낙향한 벼슬아치 홍상직과 노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또 길동은 세조 때 서자의 관리등용을 금지한 경국대전 반포를 기화로 집을 뛰쳐 나온다.이후 월출산(영암)을 근거지로 해 토호와 탐관오리의 재산을 빼앗아 나눠주는 의적으로 통했다.
이후 연산군 때까지 영광 다경포(법성포)와 충남 공주무성산 등지에서 활동하다 1500년(연산 6년)에 의금부에 체포되고 이듬해 일본으로 탈출한 것으로 조사됐다.이를 뒷받침하는 문헌이 적잖다.조선 중기에 요즘의 잡지책으로 보이는 ‘증보 해동이적(황윤석)’에는 ‘조선 중엽 이전에 홍길동이 홍일동의 배다른 동생이다.홍일동은 장성 아차곡 사람이다.’고 적혀 있다.
장성군은 그동안 홍길동 캐릭터 160여종을 개발,지역 특산품 등에 사용하고 있다.기업체에 캐릭터 사용권을 팔아 1억 2600만원을 벌었다.해마다 5월5일에는 홍길동 축제를 열고 있고 올해가 다섯번째다.
또 390억원을 들여 99년부터 홍길동 생가터에다 홍길동 주제공원을 만들고 있다.
군 문화관광과 문화개발팀 박상균(50)씨는 “지난해 발굴 고증을 거쳐 홍길동 생가를 복원해 조선 초기 서민들의 생활도구를 진열하면서 관광객들이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장성 남기창기자 kcnam@kdaily.com
★이병직 前장성문화원장
이병직 前장성문화원장
장성에는 예로부터 ‘홍길동이 장성 사람’이라는 전설이 서너개 있었다.내용인즉 황룡면 아치실에 가면 홍길동 생가터가 있고,그 아래쪽에 길동샘이 있다거나 장성에 사는 양반이 용꿈을 꾼 뒤 노비와 관계해 길동을 낳았다는 것 등이다.
86년 장성군 문화원이 펴낸 ‘문화원보’에 홍길동이 장성사람임을 체계적으로 입증하는 글을 처음으로 기고해 관심을 모았다.
실존인물 홍길동이 연산군 때 화적이라는 대목이 조선왕조실록에서 다섯 차례나 나온다.
소설 홍길동전의 작가 허균이 이 인물을 내세워 소설을 썼을 것으로 짐작이 간다.왜냐하면 소설속의 홍길동과 실존 인물의 행적이 너무나 흡사하기 때문이다.
이는 허균의 행적에서도 유추해 볼 수 있다.
그는 연산군 때 전북 부안에서 세미 징수관을 했고,전북 함열에서 귀양살이를 하다가 장성과 이웃하는 전남 담양 창평에서 살았다는 기록들이 있다.
개혁 사상가로 반골기질이던 허균이 홍길동의 전설을 소재로 해서 자신의 사상을 대변하지 않았을까.
◈강원 강릉시
홍길동이 등장하는 소설 ‘홍길동전’이 강릉에서 태동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더욱이 홍길동전이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소설로 조선중기의 혼란했던 사회상과 계급제도를 적나라하게 꼬집었던 개혁소설이라는 것도 아는 이가 드물다.
이같이 홍길동이 소설 속에서 태어난 강릉시 초당동 울창한 소나무숲에는 작가 허균(許筠,1569∼1618)의 생가가 잘 보존돼 있다.허균이 태어난 외갓집 애일당 터도 강릉시 사천면에 남아 지금은 시비가 세워져 있다.강릉시가 홍길동의 원조를 주장하는 대목이다.
홍길동은 홍길동전에서 태어났고 작가 허균이 자신의 강릉 집에서 집필했으니 당연히 강릉시가 홍길동의 ‘정신적 고향’이라는 논리다.홍길동전은 집필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작가의 개혁적인 성품도 소설 속에 고스란히 배어 있어 관심을 더한다.
쇠락의 징조를 보이던 선조와 광해군 시대 조선중기의 혼란스러운 사회상과 침울한 계급의 속박 속에 백성들의 불만이 어떠했는지 적나라하게 묘사되고 있다.이러한 어지러운 사회를 홍길동이라는 신출귀몰한 주인공을 내세워 통쾌하게 복수를 한다는 내용으로 소설이 구성돼 있다.
허균의 성향도 개혁적이다.불과 아홉살에 시를 짓고 문학에 탁월한 재능을 보이며,26세에 벼슬길에 올랐으나 역모를 꾀한 죄인으로 몰려 50세에 처형당하는 비운의 생을 마쳤다.
사회제도의 모순과 정치적부패상을 질타하고,개혁을 주창하는 등 실천적 삶을 살다 정치적인 음해로 인하여 목숨을 잃게 된다.개혁적인 정치사상가,국방 이론가,진보적 종교가,문학가 등 허균의 이름에 붙는 수식어는 그만큼 다양하다.
강릉시는 해마다 9월이면 허균과 누이동생 허난설헌을 기리는 ‘허균·허난설헌 문화제’를 열고 있다.
백일장과 그림그리기 대회,시 낭송회 등 다채롭고 전통적인 문학 축제로 열리고 있다.
강릉에서 태어난 허균과 홍길동을 널리 알려 시민들에게는 전통문학의 고향이라는 긍지를 심어주고,외지인에게는 전통의 도시를 알리겠다는 복안이기도 하다.소설 속의 홍길동이 문화제를 통해 강릉에서 다시 부활하고 있는 이유다.
강릉 조한종기자 bell21@kdaily.com
정호돈 강릉문화원장
★정호돈 강릉문화원장
교산(蛟山) 허균 선생은 혼란한 선조∼광해군 때의 조선시대 중기에 활동했던 정치가이자 작가다.
나라 안에는 임진왜란을 치른 뒤 봉건체제가 뿌리부터 흔들려 새로운 움직임이 나타났고,당쟁은 더욱 굳어져 파당을 이루던 시절을 살던 사람이다.명문 집안에서 태어난 선생은 유교와 문장을 숭상하던 사회에 반기를 들고 당시 언문으로 천대받던 한글소설 홍길동전을 쓴 인물로 한국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선생은 또 성리학의 이론뿐 아니라 불교와 도교에 심취하며,학문의 깊이와 폭을 넓히는 등 획일화된 당시 사회에서 여러 사상을 포용하는 넓은 안목을 지니기도 했다.
이같은 선생의 뜻을 기리기 위해 강릉시는 4년전부터 지역문화의 계승,지역인물의 선양,지역정신의 창조라는 목표 아래 ‘허균·허난설헌 문화제’를 열고 있다.해마다 9월 중순쯤 여는 문화제는 허균선생 추모제를 비롯해 홍길동 만화그리기,홍길동 창작 탈 만들기,(관노)탈춤추기 등 다채로운 행사가 열린다.강릉시를 대표하는 문학인과 작품 홍길동전을 위해 강릉시는 캐릭터를 만들어 활용하고 학자 중심으로 허균·허난설헌 선양회를 구성해 지역문화의 정신세계를 풍요롭게 하고 있다.
◈전남 장성군
소설 속의 주인공 홍길동이 지난 97년부터 뭇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장성군은 그 해 강릉에서 소설 ‘홍길동전’의 작가인 허균의 고향임을 내세워 연고권을 선언하자 즉각 반격했다.마침 서울방송에서도 드라마 ‘홍길동’을 방영하면서 홍길동 캐릭터를 개발한다는 소식에 장성주민들이 방송국으로 몰려가 항의했다.
2000년에는 연극인 윤모씨가 ‘돌아온 영웅 홍길동’이라는 만화영화를 극장용으로 상영하면서 ‘홍길동’을 상표(15개)로 등록하자 취소 소송을 내는 등 지적재산권 분쟁으로 치달았다.이제는 장성군이 홍길동 캐릭터에 대한 소유권자로 인정받고 있다.
내친김에 장성군은 97년 연세대 국학원에 용역조사를 맡겨 홍길동에 대한 체계적인 고증작업을 마쳤다.
이 조사에서 홍길동은 1446년(세종) 장성군 황룡면 아곡리 아치실 마을에서 이곳으로 낙향한 벼슬아치 홍상직과 노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또 길동은 세조 때 서자의 관리등용을 금지한 경국대전 반포를 기화로 집을 뛰쳐 나온다.이후 월출산(영암)을 근거지로 해 토호와 탐관오리의 재산을 빼앗아 나눠주는 의적으로 통했다.
이후 연산군 때까지 영광 다경포(법성포)와 충남 공주무성산 등지에서 활동하다 1500년(연산 6년)에 의금부에 체포되고 이듬해 일본으로 탈출한 것으로 조사됐다.이를 뒷받침하는 문헌이 적잖다.조선 중기에 요즘의 잡지책으로 보이는 ‘증보 해동이적(황윤석)’에는 ‘조선 중엽 이전에 홍길동이 홍일동의 배다른 동생이다.홍일동은 장성 아차곡 사람이다.’고 적혀 있다.
장성군은 그동안 홍길동 캐릭터 160여종을 개발,지역 특산품 등에 사용하고 있다.기업체에 캐릭터 사용권을 팔아 1억 2600만원을 벌었다.해마다 5월5일에는 홍길동 축제를 열고 있고 올해가 다섯번째다.
또 390억원을 들여 99년부터 홍길동 생가터에다 홍길동 주제공원을 만들고 있다.
군 문화관광과 문화개발팀 박상균(50)씨는 “지난해 발굴 고증을 거쳐 홍길동 생가를 복원해 조선 초기 서민들의 생활도구를 진열하면서 관광객들이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장성 남기창기자 kcnam@kdaily.com
★이병직 前장성문화원장
이병직 前장성문화원장
장성에는 예로부터 ‘홍길동이 장성 사람’이라는 전설이 서너개 있었다.내용인즉 황룡면 아치실에 가면 홍길동 생가터가 있고,그 아래쪽에 길동샘이 있다거나 장성에 사는 양반이 용꿈을 꾼 뒤 노비와 관계해 길동을 낳았다는 것 등이다.
86년 장성군 문화원이 펴낸 ‘문화원보’에 홍길동이 장성사람임을 체계적으로 입증하는 글을 처음으로 기고해 관심을 모았다.
실존인물 홍길동이 연산군 때 화적이라는 대목이 조선왕조실록에서 다섯 차례나 나온다.
소설 홍길동전의 작가 허균이 이 인물을 내세워 소설을 썼을 것으로 짐작이 간다.왜냐하면 소설속의 홍길동과 실존 인물의 행적이 너무나 흡사하기 때문이다.
이는 허균의 행적에서도 유추해 볼 수 있다.
그는 연산군 때 전북 부안에서 세미 징수관을 했고,전북 함열에서 귀양살이를 하다가 장성과 이웃하는 전남 담양 창평에서 살았다는 기록들이 있다.
개혁 사상가로 반골기질이던 허균이 홍길동의 전설을 소재로 해서 자신의 사상을 대변하지 않았을까.
2003-02-03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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