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동고비와 한가족 되어… 자연의 순수함에 몰입된 순간
발등까지 빠지는 눈길을 헤치면서 숲을 찾는 기분은 새로웠다.‘마음이 속되지 않고,게으르지 않고,그리고 평화로울 때,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비로소 아름다워진다.’는 글귀를 음미하면서 눈 쌓인 숲길을 걸었다.
정릉 골짝과 북악 골짝의 갈림길을 잇는 능선 마루금은 언제나 거친 숨을 가라앉히고 흘린 땀을 식히는 나만의 쉼터이다.그러나 나만의 쉼터를 이미 다른 객들이 차지하고 있었다.동고비 가족이 그들이었다.보통 때면 경계심을 나타내고,조금만 소리를 내거나 가까이 다가가는 시늉을 하면 멀어지는 것이 이들이지만,눈 내린 날은 달랐다.아마 하얀 세상으로 변한 겨울 풍경을 가슴에 담고자 속된 마음을 버리고,또 부지런을 떨면서 나선 내 모습이 혹 평화롭게 보여서 낯을 가리는 동고비들조차 쉽게 마음을 허락했는지 모르겠다.
그 순간 나 자신은 가지에 앉아 있는 새가 되어본다.새들의 지저귐을 듣고,내 몸 깊은 곳에서 그들의 소리를 느껴본다.공기를 가로지르면서 산마루를넘고,마침내 창공으로 솟구쳐 본다.자연의 모든 소리와 움직임을 오관으로 느껴본다.어느 틈에 나 자신도 동고비 가족이 되었다. 그런 느낌 덕분일까.동고비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꽤 오랫동안 지속되었다.이방인인 나를 동료인 양 받아들이면서,먹이를 먹고 재잘거리는 모습을 지척에서 지켜보는 것은 행복한 경험이었다.
산을 자주 찾았던 어린 시절의 경험 덕분에 산토끼,다람쥐,노루나 어치,박새,산비둘기 같은 작은 야생동물은 익숙한 존재이다.그러나 어릴 적의 호기심은 이런 야생동물들과 교감을 나누면서 얻는 정신적 기쁨보다는 오히려 이들을 쫓거나 잡는 물질적 욕심이 앞서 있었다.야생동물들과의 교감을 나눌 수 있는 기회는 오히려 근래의 일이다.
오대산 상원사에서 적멸보궁에 이르는 가을 숲길은 아름다웠다.새벽같이 나선 걸음이었기에 산을 찾는 인파도 없었다.한적하다 못해 오히려 사람이 그리울 지경이었다.서대사를 지나 능선에 이르는 가파른 경사길은 자주 걸음을 멈추게 만들었다.숨을 가다듬고 있을 때,한가하게 놀고 있는 다람쥐가바로 지척에 있었다.인적이라곤 없는 산길에서 만난 다람쥐는 반가웠다.다람쥐도 나의 존재를 괘념치 않는 기색이었다.재주를 넘고,양식을 모으는 모습이 유난히 평화스러워 보였다.몇 장의 사진을 담고,다시 걸음을 시작했다.다람쥐도 걸음을 시작했다.내 주변을 맴도는 모습이 호기심 많은 장난꾸러기 같았다.제풀에 지쳐서 곧 사라지리라 생각했다.그러나 다람쥐와의 동행은 적멸보궁까지 이어졌다.
무엇을 열렬히 사랑한다면,어떤 것들도 당신과 함께 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적멸보궁에 참배한 후 비로봉을 향한 걸음에는 다람쥐와의 동행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다람쥐와 나 사이에 싹튼 튼튼한 신뢰 관계는 아쉽게도 관광회사에서 몰려온 떼거리 등산객들의 소음 때문에 더 이상 지속되지 못했다.
동고비 가족과 함께 나눈 설경이나 다람쥐와 함께 거닐었던 단풍 숲을 오래 동안 잊지 못하고 있다.‘더 높이,더 많이,더 빨리.’를 요구하는 일상의 삶에 우리를 구속하는 시간,명예,부를 잠시 접어두고 자연의 순수함에 몰입되어 본 그 순간을 떠올릴 때면 나는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편집자주: 동고비는 청회색의 작은새
전 영 우
발등까지 빠지는 눈길을 헤치면서 숲을 찾는 기분은 새로웠다.‘마음이 속되지 않고,게으르지 않고,그리고 평화로울 때,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비로소 아름다워진다.’는 글귀를 음미하면서 눈 쌓인 숲길을 걸었다.
정릉 골짝과 북악 골짝의 갈림길을 잇는 능선 마루금은 언제나 거친 숨을 가라앉히고 흘린 땀을 식히는 나만의 쉼터이다.그러나 나만의 쉼터를 이미 다른 객들이 차지하고 있었다.동고비 가족이 그들이었다.보통 때면 경계심을 나타내고,조금만 소리를 내거나 가까이 다가가는 시늉을 하면 멀어지는 것이 이들이지만,눈 내린 날은 달랐다.아마 하얀 세상으로 변한 겨울 풍경을 가슴에 담고자 속된 마음을 버리고,또 부지런을 떨면서 나선 내 모습이 혹 평화롭게 보여서 낯을 가리는 동고비들조차 쉽게 마음을 허락했는지 모르겠다.
그 순간 나 자신은 가지에 앉아 있는 새가 되어본다.새들의 지저귐을 듣고,내 몸 깊은 곳에서 그들의 소리를 느껴본다.공기를 가로지르면서 산마루를넘고,마침내 창공으로 솟구쳐 본다.자연의 모든 소리와 움직임을 오관으로 느껴본다.어느 틈에 나 자신도 동고비 가족이 되었다. 그런 느낌 덕분일까.동고비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꽤 오랫동안 지속되었다.이방인인 나를 동료인 양 받아들이면서,먹이를 먹고 재잘거리는 모습을 지척에서 지켜보는 것은 행복한 경험이었다.
산을 자주 찾았던 어린 시절의 경험 덕분에 산토끼,다람쥐,노루나 어치,박새,산비둘기 같은 작은 야생동물은 익숙한 존재이다.그러나 어릴 적의 호기심은 이런 야생동물들과 교감을 나누면서 얻는 정신적 기쁨보다는 오히려 이들을 쫓거나 잡는 물질적 욕심이 앞서 있었다.야생동물들과의 교감을 나눌 수 있는 기회는 오히려 근래의 일이다.
오대산 상원사에서 적멸보궁에 이르는 가을 숲길은 아름다웠다.새벽같이 나선 걸음이었기에 산을 찾는 인파도 없었다.한적하다 못해 오히려 사람이 그리울 지경이었다.서대사를 지나 능선에 이르는 가파른 경사길은 자주 걸음을 멈추게 만들었다.숨을 가다듬고 있을 때,한가하게 놀고 있는 다람쥐가바로 지척에 있었다.인적이라곤 없는 산길에서 만난 다람쥐는 반가웠다.다람쥐도 나의 존재를 괘념치 않는 기색이었다.재주를 넘고,양식을 모으는 모습이 유난히 평화스러워 보였다.몇 장의 사진을 담고,다시 걸음을 시작했다.다람쥐도 걸음을 시작했다.내 주변을 맴도는 모습이 호기심 많은 장난꾸러기 같았다.제풀에 지쳐서 곧 사라지리라 생각했다.그러나 다람쥐와의 동행은 적멸보궁까지 이어졌다.
무엇을 열렬히 사랑한다면,어떤 것들도 당신과 함께 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적멸보궁에 참배한 후 비로봉을 향한 걸음에는 다람쥐와의 동행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다람쥐와 나 사이에 싹튼 튼튼한 신뢰 관계는 아쉽게도 관광회사에서 몰려온 떼거리 등산객들의 소음 때문에 더 이상 지속되지 못했다.
동고비 가족과 함께 나눈 설경이나 다람쥐와 함께 거닐었던 단풍 숲을 오래 동안 잊지 못하고 있다.‘더 높이,더 많이,더 빨리.’를 요구하는 일상의 삶에 우리를 구속하는 시간,명예,부를 잠시 접어두고 자연의 순수함에 몰입되어 본 그 순간을 떠올릴 때면 나는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편집자주: 동고비는 청회색의 작은새
전 영 우
2003-01-27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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