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엔 남북이 뱃머리를 나란히 한 채 사이좋게 꽃게를 잡았으면 좋겠습니다.”
인천광역시 옹진군 연평도 주민 최율(崔律·47·연평면 연평리)씨 가족은새해를 이틀 앞둔 30일 오후 부둣가 옆에 위치한 ‘연평해전 승전비’를 찾았다.4년 전 우리 해군이 북방한계선을 침범한 북한 경비정을 뱃머리로 밀어낸 사건을 기념한 것이다.
최씨와 아내 오정숙(45)씨는 서해교전으로 어느 때보다 가슴앓이를 했던 2002년을 되돌아보며 만감이 엇갈리는 표정을 지었다.
이들은 자식 세대에서는 반드시 통일이 돼 삶의 터전인 서해에서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란다며 덕현(17·연평고 1년)·덕준(15·연평중 2년)·덕규(5) 세 아들의 손을 꼬옥 쥐었다.
최씨는 “얼마 전 덕준이가 ‘같은 민족끼리 총부리를 겨눈 것을 기념해 승전비를 세웠다는 사실이 창피하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얼마나 속이 뜨끔했는지 모른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최씨 부부는 지난 6월말 서해교전의 쓰라린 기억을 떠올렸다.
당시 1500여명의 꽃게잡이 어민들은 남북한의 긴장 고조에 따른 조업중단조치로 밤잠을 설쳐야 했다.
서해교전이 일어난 6월29일 오전 최씨는 부둣가 근처에서 ‘진흥 7호’를타고 꽃게를 잡고 있었다.갑자기 북한쪽 바다에서 ‘펑’하는 군함의 대포소리가 계속 들려왔다.근처에서 조업중인 주민들이 전화를 걸어 “빨간 바가지(북한 경비정)가 쳐들어왔다.”고 다급하게 소리쳤다.
아내 오씨는 “부상한 해군 병사를 후송하는 작업을 도운 주민들로부터 현장의 참상을 전해 듣고 너무 안타까워 눈물이 쏟아졌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더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잦은 조업구역 이탈이 북쪽 경비정이 내려오도록 빌미를 준게 아니냐는 뭍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최씨 부부는 “내년에는 마음 놓고 어구질을 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고 입을 모았다.이들은 최근 북한 핵 문제를 다룬 언론 보도가 나올 때마다 가슴이 덜컥 내려 앉는다며 “이제 간신히 고비를 넘겼는데 또다시 조업하기 힘든 분위기가 오면 어떡하느냐.”며 발을 굴리기도 했다.
특히 최씨 가족은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당선자에게 올해는 남북간 화합과 신뢰의 한 해가 될 수 있도록 힘써 달라고 주문했다.
집에서 인터넷을 통해 바깥 소식을 거의 매일 접하고 있다는 장남 덕현군은 “남북이 평화적으로 하나가 될 수 있도록 노 당선자가 ‘남북화합’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했으면 좋겠다.”고 야무지게 당부했다.아내 오씨는 “학교를 믿지 못해 연평도 아이들은 인천으로 나가고,뭍 아이들은 외국으로 나가는 서글픈 교육 현실을 바로잡아달라.”고 부탁했다. “남북 정전협정 50주년이 되는 2003년이 남북 화합의 해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최씨 가족 뒤로 저물어가는 서해 하늘이 유난히 붉게 물들었다.
연평도 이영표기자 tomcat@
인천광역시 옹진군 연평도 주민 최율(崔律·47·연평면 연평리)씨 가족은새해를 이틀 앞둔 30일 오후 부둣가 옆에 위치한 ‘연평해전 승전비’를 찾았다.4년 전 우리 해군이 북방한계선을 침범한 북한 경비정을 뱃머리로 밀어낸 사건을 기념한 것이다.
최씨와 아내 오정숙(45)씨는 서해교전으로 어느 때보다 가슴앓이를 했던 2002년을 되돌아보며 만감이 엇갈리는 표정을 지었다.
이들은 자식 세대에서는 반드시 통일이 돼 삶의 터전인 서해에서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란다며 덕현(17·연평고 1년)·덕준(15·연평중 2년)·덕규(5) 세 아들의 손을 꼬옥 쥐었다.
최씨는 “얼마 전 덕준이가 ‘같은 민족끼리 총부리를 겨눈 것을 기념해 승전비를 세웠다는 사실이 창피하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얼마나 속이 뜨끔했는지 모른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최씨 부부는 지난 6월말 서해교전의 쓰라린 기억을 떠올렸다.
당시 1500여명의 꽃게잡이 어민들은 남북한의 긴장 고조에 따른 조업중단조치로 밤잠을 설쳐야 했다.
서해교전이 일어난 6월29일 오전 최씨는 부둣가 근처에서 ‘진흥 7호’를타고 꽃게를 잡고 있었다.갑자기 북한쪽 바다에서 ‘펑’하는 군함의 대포소리가 계속 들려왔다.근처에서 조업중인 주민들이 전화를 걸어 “빨간 바가지(북한 경비정)가 쳐들어왔다.”고 다급하게 소리쳤다.
아내 오씨는 “부상한 해군 병사를 후송하는 작업을 도운 주민들로부터 현장의 참상을 전해 듣고 너무 안타까워 눈물이 쏟아졌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더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잦은 조업구역 이탈이 북쪽 경비정이 내려오도록 빌미를 준게 아니냐는 뭍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최씨 부부는 “내년에는 마음 놓고 어구질을 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고 입을 모았다.이들은 최근 북한 핵 문제를 다룬 언론 보도가 나올 때마다 가슴이 덜컥 내려 앉는다며 “이제 간신히 고비를 넘겼는데 또다시 조업하기 힘든 분위기가 오면 어떡하느냐.”며 발을 굴리기도 했다.
특히 최씨 가족은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당선자에게 올해는 남북간 화합과 신뢰의 한 해가 될 수 있도록 힘써 달라고 주문했다.
집에서 인터넷을 통해 바깥 소식을 거의 매일 접하고 있다는 장남 덕현군은 “남북이 평화적으로 하나가 될 수 있도록 노 당선자가 ‘남북화합’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했으면 좋겠다.”고 야무지게 당부했다.아내 오씨는 “학교를 믿지 못해 연평도 아이들은 인천으로 나가고,뭍 아이들은 외국으로 나가는 서글픈 교육 현실을 바로잡아달라.”고 부탁했다. “남북 정전협정 50주년이 되는 2003년이 남북 화합의 해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최씨 가족 뒤로 저물어가는 서해 하늘이 유난히 붉게 물들었다.
연평도 이영표기자 tomcat@
2002-12-31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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