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집 ‘인연’의 금아(琴兒) 피천득(92)이 어린이를 위해 세상을 아름답게 볼 수 있는 창 하나를 열었다.아흔살을 훌쩍 넘긴 노수필가의 여린 시심(詩心)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책의 제목은 ‘어린 벗에게’(여백 펴냄).
단아하고 정갈한 작품세계의 단면을 에둘러 보여주는 책은 2부로 나누어 묶었다.그에게 1부는 회고록의 의미도 있다.한창 작품활동이 왕성하던 1940∼50년대 어린이 잡지 ‘소학생’‘어린이’ 등에 번역해 소개한 글 6편을 간추려 실었다.2부에는 그가 수필집 ‘금아 문선’ 등에 직접 쓴 시와 산문 가운데 어린이 눈높이에 맞는 17편을 뽑았다.
글들은 초등학교 3학년 정도면 충분히 행간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쉽고 간명하다.마크 트웨인,알퐁스 도데,너새니얼 호손 등 세계적 작가들의 짧은 소설을 소개한 1부에서는 단편에 관한 원로 수필가의 남다른 감식안이 엿보인다.
퓰리처 문학상을 거부한 미국인 작가 윌리엄 사로얀의 ‘아름다운 흰말의 여름’,마크 트웨인의 ‘하얗게 칠해진 판장’ 등은 대작가들의 어릴 적 기억이 투영된 글.어른 독자도 시선이 쏠릴 듯하다.
널리 알려진 친숙한 단편도 끼여 있다.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너새니얼 호손의 ‘큰바위 얼굴’이 묵직한 감동과 교훈을 전해준다.
평범한 일상에서 빛나는 글감을 끄집어내는 독특한 필치를 보여주는 건 아무래도 2부에서다.
하버드대 유학 시절 고국의 어린 딸 서영에게 보낸 편지글.이국땅에서 딸을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부정(父情)이 절절하다.“아빠가 부탁이 있는데 잘 들어주어.밥은 천천히 먹고,길은 천천히 걷고,말은 천천히 하고,네 책상 위에‘천천히’라고 써 붙여라.”(‘금아 문선’에서)
뒤이어 ‘아기’와 ‘유년’을 주제로 한 동시들은 어린 독자의 마음에 아련한 서정을 심어주리라.
‘아가는/이불 위를 굴러갑니다/잔디 위를 구르듯이//엄마는/실에 꿴 바늘을 들고/그저 웃기만 합니다//차고 하얀/새로 시치는 이불’(‘아가는’)
지은이는 “이 책이 생애 마지막이 될 것”이라고 담담히 밝혔다.그래서일까.신기하게도 행간행간에서 뜨겁고도 풋풋한 젊은 날의 정열이 섬광처럼 오버랩되기도 한다.9000원.
황수정기자
단아하고 정갈한 작품세계의 단면을 에둘러 보여주는 책은 2부로 나누어 묶었다.그에게 1부는 회고록의 의미도 있다.한창 작품활동이 왕성하던 1940∼50년대 어린이 잡지 ‘소학생’‘어린이’ 등에 번역해 소개한 글 6편을 간추려 실었다.2부에는 그가 수필집 ‘금아 문선’ 등에 직접 쓴 시와 산문 가운데 어린이 눈높이에 맞는 17편을 뽑았다.
글들은 초등학교 3학년 정도면 충분히 행간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쉽고 간명하다.마크 트웨인,알퐁스 도데,너새니얼 호손 등 세계적 작가들의 짧은 소설을 소개한 1부에서는 단편에 관한 원로 수필가의 남다른 감식안이 엿보인다.
퓰리처 문학상을 거부한 미국인 작가 윌리엄 사로얀의 ‘아름다운 흰말의 여름’,마크 트웨인의 ‘하얗게 칠해진 판장’ 등은 대작가들의 어릴 적 기억이 투영된 글.어른 독자도 시선이 쏠릴 듯하다.
널리 알려진 친숙한 단편도 끼여 있다.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너새니얼 호손의 ‘큰바위 얼굴’이 묵직한 감동과 교훈을 전해준다.
평범한 일상에서 빛나는 글감을 끄집어내는 독특한 필치를 보여주는 건 아무래도 2부에서다.
하버드대 유학 시절 고국의 어린 딸 서영에게 보낸 편지글.이국땅에서 딸을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부정(父情)이 절절하다.“아빠가 부탁이 있는데 잘 들어주어.밥은 천천히 먹고,길은 천천히 걷고,말은 천천히 하고,네 책상 위에‘천천히’라고 써 붙여라.”(‘금아 문선’에서)
뒤이어 ‘아기’와 ‘유년’을 주제로 한 동시들은 어린 독자의 마음에 아련한 서정을 심어주리라.
‘아가는/이불 위를 굴러갑니다/잔디 위를 구르듯이//엄마는/실에 꿴 바늘을 들고/그저 웃기만 합니다//차고 하얀/새로 시치는 이불’(‘아가는’)
지은이는 “이 책이 생애 마지막이 될 것”이라고 담담히 밝혔다.그래서일까.신기하게도 행간행간에서 뜨겁고도 풋풋한 젊은 날의 정열이 섬광처럼 오버랩되기도 한다.9000원.
황수정기자
2002-12-27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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