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수송사(輸送史)의 거인이 가다.’
한진 조중훈 회장은 해방이후 트럭 1대로 한진상사를 창업한 이래 육·해·공을 아우르는 수송의 길을 여는데 전력을 쏟은 재계1세대였다.
특히 1세대 창업주로는 롯데 신격호(辛格浩) 회장과 함께 마지막 남은 현직 회장이었기에 그의 부음이 재계에 준 안타까움은 남다르다.
조 회장이 해방과 함께 시작한 한진상사는 한국전쟁으로 치명적 타격을 입게 되지만 월남전에서 미군의 군수물자 수송을 맡으면서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한다.66년부터 71년까지 5년간 한진그룹이 월남에서 벌어들인 외화는 모두 1억2000만달러 규모였다.64년 한국은행의 가용외화가 4700만달러에 지나지 않은 것을 감안하면 조 회장은 70년대 ‘우리나라 최고부자’였다.
60년대 말부터 사업을 크게 확장,69년에는 국영 대한항공공사를 인수,㈜대한항공으로 상호를 변경했고 82년에는 국산 전투기 ‘제공호’를 생산했다.특히 집무실 한켠에 ‘수송보국(輸送報國)’이라는 휘호를 걸어놓고 수송외길에 매진,대한항공·한진해운·한진·한진중공업·동양화재 등 21개 계열사에 자산 24조원 규모의 종합 수송그룹을 일으켰다.
외화획득으로 사업을 키운 것에 큰 자부심을 가져 왔던 조 회장은 프랑스 일등공훈 국민훈장을 비롯 독일,벨기에,몽골 등에서 국가훈장을 9개나 받는등 ‘민간외교관’으로 활약했다.인재양성에도 남다른 정열을 쏟아 68년 인하학원을 인수했고 79년 한국항공대와 정석고등학교를 설립했다.
윤창수기자 geo@
한진 조중훈 회장은 해방이후 트럭 1대로 한진상사를 창업한 이래 육·해·공을 아우르는 수송의 길을 여는데 전력을 쏟은 재계1세대였다.
특히 1세대 창업주로는 롯데 신격호(辛格浩) 회장과 함께 마지막 남은 현직 회장이었기에 그의 부음이 재계에 준 안타까움은 남다르다.
조 회장이 해방과 함께 시작한 한진상사는 한국전쟁으로 치명적 타격을 입게 되지만 월남전에서 미군의 군수물자 수송을 맡으면서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한다.66년부터 71년까지 5년간 한진그룹이 월남에서 벌어들인 외화는 모두 1억2000만달러 규모였다.64년 한국은행의 가용외화가 4700만달러에 지나지 않은 것을 감안하면 조 회장은 70년대 ‘우리나라 최고부자’였다.
60년대 말부터 사업을 크게 확장,69년에는 국영 대한항공공사를 인수,㈜대한항공으로 상호를 변경했고 82년에는 국산 전투기 ‘제공호’를 생산했다.특히 집무실 한켠에 ‘수송보국(輸送報國)’이라는 휘호를 걸어놓고 수송외길에 매진,대한항공·한진해운·한진·한진중공업·동양화재 등 21개 계열사에 자산 24조원 규모의 종합 수송그룹을 일으켰다.
외화획득으로 사업을 키운 것에 큰 자부심을 가져 왔던 조 회장은 프랑스 일등공훈 국민훈장을 비롯 독일,벨기에,몽골 등에서 국가훈장을 9개나 받는등 ‘민간외교관’으로 활약했다.인재양성에도 남다른 정열을 쏟아 68년 인하학원을 인수했고 79년 한국항공대와 정석고등학교를 설립했다.
윤창수기자 geo@
2002-11-18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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