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피의자 인권

[시론] 피의자 인권

박홍규 기자 기자
입력 2002-11-06 00:00
수정 2002-11-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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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박종철씨 사건 이후 15년이 지나 다시 고문치사 사건이 터졌다.

박씨 사건은 ‘독재타도 민주쟁취’의 분수령인 6월항쟁으로 이어졌으나,15년 이후 ‘인권정부’라고 하는 지금 그때와 똑같은 야만적인 고문치사 사건이 다시 터졌다.따라서 나는 단언한다.1987년 이후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없다.달라지기는커녕 도리어 후퇴했다.박씨의 희생과 6월항쟁은 ‘죽 쒀서 개준 것밖에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15년 전 고문치사 사건을 낳은 밀실·밤샘수사,자백강요 수사가 전혀 변하지 않았다.당시 검경의 행태가 지금도 그대로다.그때 법과 제도,관행이 지금도 바뀌지 않았다.

따라서 이번 사건을 해결한답시고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을 바꾸고 담당 검사와 수사관을 구속해도,나아가 대통령이 국민에게 사과를 해도 15년 뒤 이런 사건은 얼마든지 다시 터질 수 있는 것이다.내일 당장 재발할 수도 있다.

일제시대 이래 수사관행상 가장 일반적인 밤샘조사는 고문으로 보아야 하는 범죄다.검경은 현실상 어쩔 수 없다고 주장하지만,이는 헌법상 적법절차나 신체의 자유,피고인의 방어권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오래 전부터 미국·일본에서는 밤샘수사를 고문으로 인정하는 판례가 나왔다.유럽에서는 밤 10시부터 익일 새벽 4시까지 피의자를 조사하거나 연속해서 5∼6시간 계속 조사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밤샘수사는 아예 고문으로 이해되지도 않고 금지되기는커녕 일상화돼 있다.이제는 법으로 금지해야 한다.

또한 헌법에 규정된 묵비권을 실질화해야 한다.묵비권은 압도적으로 강대한 수사 당국의 수사력과 소추력에 대항해 방어력을 높이고 형사절차의 야만화를 방지하는 데 불가결한 것이다.국가권력이라도 인격을 무시하고 진술을 강제할 수 없다는 취지로 인격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고문이 자행되고 묵비권이 침해되는 요인 중의 하나인 유치장 등 대용감옥을 없애야 한다.대용감옥은 1908년에 제정된 일본 감옥법 제1조 3항에 유래한다.당시에는 구치소 증설비용의 조달이 어려우니 대용감옥을 둔다는 것이었는데,지금도 그것이 이유라면 참으로 문제다.현행 헌법 하에서 대용감옥은 영장주의와 묵비권을 실질적으로 침해한다는 이유에서 명백한 위헌이다.

불법수사의 가장 기본적인 요인은 변호제도가 불충분하다는 것이다.통상 수사 단계에서 수집된 증거가 공판단계에서 결정적인 의미를 갖기 때문에 수사단계야말로 피의자에게는 ‘가장 위험한 시기’이고 법전문가인 변호사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헌법상 명문규정이 없고 형사소송법상으로도 피의자에게는 국선변호인을 의뢰해 도움을 받을 권리가 인정되지 않는다.따라서 경제력 등의 사정으로 변호인을 의뢰할 수 없는 피고인은 아무런 대책없이 수사검찰 당국의 강대한 공격에 직면하게 되며 묵비권을 비롯한 방어권을 적절하게 행사할 수 없다.따라서 피의자 국선변호인제도의 입법화가 강력하게 요망된다.

마지막으로 밤샘수사를 비롯한 고문을 막기 위해 엄정한 법이 제정돼야 한다.이번 사건에 대해서도 박종철씨 사건에서처럼 당장 피해자에 대한 손해배상이 인정돼야 할 것이지만,박씨 사건에서는 하지 못했던 일 즉 고문을 직접 행한 수사요원에게 위자료를 받아내는 구상권까지 신속하게 행사해야 한다.

나아가 고문자를 엄정하게 처벌해야 한다.진정한 법의 지배를 확립하고 사회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고문자는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따라서 검찰이 봐주기 식의 해결을 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그래서는 야만과 미개의 고문치사 사건이 다시 터질 것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박홍규 영남대 교수 법학
2002-11-06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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