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엄] 고령화사회 고용대책

[밀레니엄] 고령화사회 고용대책

손정숙 기자 기자
입력 2002-10-23 00:00
수정 2002-10-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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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는 빠르게 고령화되는데 일터에서는 60대는 물론 50대만 해도 찾아보기 힘들다.공기관과 기업의 감원기준이 나이로 정해져 이들이 지난 수년간 집중 밀려난 탓이다.우리 사회는 이들의 원숙한 사회 경험을 재활용할 준비도 되어있지 않다.미·일의 노령층 재고용 실태와 한국의 후진성을 진단해본다.

■유연한 노동시장 구축 서둘러야

“외환위기가 몰아닥쳐 금융권마다 구조조정 회오리바람에 휩싸였을 때 감원 기준이 무엇이 될 것인지를 놓고 조직원들은 저마다 마음졸였다.하지만 인사담당자들에겐 답이 빤히 보였다.정년이 코 앞인데다 생산성에 비해 높은 임금을 받는 고령자 순으로 정리할 수 밖에 없었다.비용절감 측면에서 합리적일 뿐만 아니라 사회 통념상으로도 가장 무리없는 선택이었기 때문이다.”한 은행 관계자의 회고다.

요즘의 고용시장 자화상도 별반 다르지 않다.고령화 사회의 급속한 진전에도 불구하고 고용시장의 연령 차별은 여전히 뿌리깊어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0년 7%를 돌파한 우리나라의전체 인구 대비 65세 이상 고령층 비율이 오는 2020년에는 15%를 뛰어넘을 전망이다.세계적으로 유례없이 가파르게 노년층이 증가하고 있는 셈이다.

불행히도 이들이 갈 곳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노동연구원 허재준(許裁準) 박사에 따르면 외환위기가 발생한 97년 말 10인 이상 사업체의 55세 이상 상용 근로자수는 97년 초에 비해 7만 2000명 감소했다.

전체 55세 이상 근로자의 19.5%로 다섯명중 한명꼴로 직장을 잃은 셈이다.이 가운데 경기가 호전된 2000년 이후 회복된 자리는 5만 4000개였다.허 박사는 “외환위기를 겪으며 사회에서 가장 먼저 내몰린 노년층이 그 이후에도 좀처럼 직업현장으로 복귀할 기회를 갖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미국·유럽 등이 오래 전부터 고령화 고용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정년 철폐 등 시스템 구축작업을 차곡차곡 진행해온 반면 우리사회의 대응 수준은 안일하기까지 하다.

최근 들어서야 정부와 여당 등을 중심으로 정년 연장,고령자 취업비율에 따른 보조금 지급 등 정책 대안들을 내놓고 있는 실정이다.

기업체에 대한 인센티브 지급 등은 저소득층을 위한 사회보장과 고령자 고용대책을 혼동한 데서 나온 단기 처방에 불과하다.

연공서열급 폐지,임금피크제(생산성 증감에 따라 급여가 연동돼 오르내리는 임금 설계) 도입 등 시장지향적 고용 인프라를 구축하는데 정부는 무기력하기만 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이같은 정책 부재가 결국 외환위기로 내몰린 고령자들을 다시는 직업현장에 되돌아오지 못할 가장 큰 피해자로 만들어버렸다.

고령화 고용문제는 전체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떼어 생각할 수 없다.숭실대 경제국제통상학부 조준모(趙俊模) 교수는 “최근 공직자 정년 연장 문제가 이슈가 되고 있지만 합리적 인사평가제,생산성에 따른 급여체계 등이 정착되지 않고서는 늘어난 정년이 오히려 고용시장 진입장벽을 더욱 높이는 역효과를 불러 올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기존 조직 문화에선 일단 정규직으로 취직만 되면 정년까지 철밥통을 보장받았다.소속 자체가 진입장벽인 이런 고용구조 아래에서는 외부인력들은 아무리 능력자라도 일거리 얻기가 별따기다.내부 직원들의 생산성 향상은 뒷전이다.오랫동안 기득권에 안주하다 정년퇴직한 이들이 갈 곳은 집과 노인정뿐일 수 밖에 없다.

일부 고령자들의 직업의식도 문제라는 지적이다.조 교수는 “일본에선 퇴직한 은행 지점장들이 창구에서 세금받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면서 “‘이만큼의 직위에 올랐던 내가 허드렛일은 할 수 없다’는 권위 의식이 하루빨리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손정숙기자 jssohn@

■일본에선 - 서비스분야 ‘노인천국' 개인저축 절반이 노인

(도쿄 황성기특파원) 일본은 세계 제1의 ‘노인천국’이다.노령화와 노령화 정책 모두 선진국 가운데 최고 수준이다.노인도 많지만 노인들이 살기에 편한 곳이 바로 일본이다.

지난 9월말 현재 65세 이상 노인은 2362만명이다.총 인구 1억 2647만명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8.5%로 선진 7개국(G7)가운데 가장 높다.75세 이상은 사상 처음으로 1000만명을 돌파했다.

5.4명에 1명 꼴인 노인은 21세기 중반에 이르면 3명에 1명꼴로 급속히 늘어난다.이를 감안해 일본 정부는 2000년부터 고령자를 겨냥한 ‘골드 플랜 21’을 시행하고 있다.

골드 플랜은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장기요양 보험인 ‘개호(介護)보험’을 축으로 하고 있다.

나라가 보험재정의 50%를 부담하는 개호보험은 가족이 꺼리는 노인 봉양을 사회가 떠맡는 것이다.재정의 나머지 절반은 40∼64세의 연령층과 65세 이상 노인연금 일부를 보험료로 전환해 충당하고 있다.노인 스스로가 보험료 일부를 부담하는 셈이다.

일본은 1970년대 초반 노인보험료를 국가가 전액 부담하는 정책을 내놨다가 실패했다.노인이 급속히 늘어난데다,노인 의료비가 전체 의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컸던 것이 계산 착오였다.하지만 개호보험으로 노인들은 노후 걱정없이 보낼 수 있게 됐다.

노인의 일자리도 상당하다.통계로 나타나지는 않지만 아르바이트는 어디서든 손쉽게 구할 수 있다.유료 도로의 톨게이트 징수원의 상당수는 노인이고,운전이 괜찮을까 싶은 백발의 노인들이 태연하게 택시를 몬다.뿐만 아니라 청소원,경비원,식당 등 사회 구석구석에서 노인들의 활약은 두드러진다.

생산성을 크게 요구하지 않는 서비스 분야에서 노인을 고용하는 측에서도 적은 비용으로 꼼꼼하고 성실하게 일해주는 이들이 고맙다.최근에는 ‘60세인 정년을 65세로 늘려야 한다.’고 일본 최대의 노조인 렌고(連合)가 제기했다.

하지만 가까운 미래에 실현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노인 복지정책은 빈틈없지만 일본의 고민은 크다.노령화로 국가의 활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아이를 적게 낳는 소자화(少子化)와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노령화로 일본 인구가 절반으로 줄어든다는 계산도 있다.

그래도 일본의 노인은 천덕꾸러기는 아니다.총 개인저축 1411조엔(약 1경 4110조원)의 절반을 이들 노인이 쥐고 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들의 지갑에서 돈을 끌어내기 위한 각종 실버산업이 10년 장기 불황을 겪는 일본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동력의 한 축이다.

marry01@

■미국에선 - 정년퇴직 법으로 금지 채용도 나이제한 없어

(워싱턴 백문일특파원) 미국에는 정년이란 게 없다.구조조정에 따른 정리해고는 가능하지만 나이가 차면 무조건물러나야 하는 퇴직제도는 법으로 금지돼 있다.‘고용에서의 연령차별금지법(ADEA)’이 확고하기 때문이다.1967년 미 의회가 제정한 이래 1980년대 중반까지 정년을 70세로 연장했다.1987년 1월부터는 공공이나 민간부문 가릴 것 없이 정년제를 폐지했다.다만 소방관이나 경찰관 등 특수직은 나이를 이유로 해고할 수 있다.

근로자를 채용할 때도 나이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미 신문의 구직란에 ‘몇살 이상 또는 이하’라는 표현은 실을 수가 없다.한국의 신입사원 채용처럼 ‘몇년 이후 출생자’로 자격을 제한했다가는 기업주가 당장 쇠고랑을 차거나 벌금을 물게 된다.페루에서 최근 워싱턴 주변으로 이민온 마리오 아퀴나스(58)는 자동차 판매업소의 경리사원으로 취직했다.면접만 간단히 치른 뒤바로 다음날부터 일을 시작했다.주당 530달러씩 한달에 2300달러 가량을 번다.나이에 비하면 적지 않는 보수다.젊은 사람들에게 밀려 일자리를 찾지 못하던 페루의 현실과는 너무 다르다.

나이를 빌미로 근로자의 일할 권리를 포기하도록 강요하거나 암묵적인 압력을 가한 것으로 비춰질 경우 불법행위로 처벌받는다.불가피하게 조기 퇴직을 실시할 경우 인센티브에 대한 정보를 모든 사원에게 정확하고 공평하게 제공해야 하기 때문에 조기퇴직은 쉽지 않다.

이런 탓에 공공기관이나 지역 도서관,관광센터,대형 쇼핑몰의 안내소 등에서 백발 노인들의 일하는 모습을 찾기란 어렵지 않다.경쟁력과 취업기술이 없는 노인들을 위해 연방 및 주·지방 정부가 마련한 일자리다.별도의 예산으로 수당을 지급한다.55세 이상이 가능하지만 60세 이상의 저소득층이 우선 대상이다.공공기관이나 비영리법인 등에서 노인들의 전문직 경험을 활용하는 프로그램도 많다.수당은 없지만 교통비와 식비를 지급하기 때문에 노인들의 여가활동으로 활용되고 있다.노인들만을 대상으로 한 레크레이션·관광·식사제공 프로그램은 카운티 단위의 자치단체가 무료로 운영한다.65세 이상의 저소득층 노인에게는 생활비와 임대주택을 제공한다.한달에 임대료와 주택관리비 등을 빼고 나면 500달러 안팎을 용돈으로 쓸 수 있다.물론 고소득 퇴직자들은 골프를 즐기거나 여생을 휴양지 주변에서 보낸다.

유럽 국가들은 정년을 65세로 늘리고 있다.조기 퇴직하면 국가의 사회보장부담이 늘기 때문에 기업주가 되도록 근로자의 정년을 채우게 하는 추세로 발전하고 있다.5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조기퇴직을 강요당하는 한국의 분위기와는 완전히 딴 판이다.

mip@
2002-10-23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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