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여구 분칠한 ‘친일문인 행적’, 민족작가회의 참회의 고백

미사여구 분칠한 ‘친일문인 행적’, 민족작가회의 참회의 고백

입력 2002-08-16 00:00
수정 2002-08-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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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이 히데오/그대는 우리의 오장 우리의 자랑/그대는 조선 경기도 개성 사람/인(印)씨의 둘째 아들 스물 한 살 먹은 사내/마쓰이 히데오/그대는 우리의 가미가제 특별공격대원/(중략)/우리의 동포들이 밤과 낮으로/정성껏 만들어 보낸 비행기 한 채에/그대,몸을 실어 날았다가 내리는 곳/쪼각쪼각 부서지는 산더미같은 미국군함/수백 척의 비행기와/대포와 폭발탄과/머리털이 샛노란 벌레같은 병정을 싣고/우리의 땅과 목숨을 뺏으러 온/원수 영미의 항공모함을/그대/몸뚱이로 내려쳐서 깨었는가/깨뜨리며 깨뜨리며 자네도 깨졌는가’

미당 서정주가 카미가제 특공대로 전사한 조선청년을 위해 썼다는 ‘송정오장송가(松井伍長頌歌)’를 읽으며 시방 우리는 슬프다.고운 시심으로 ‘질마재 신화’를 빚어낸 미당이,자살특공대로 나섰다가 산화한 조선 청년 ‘마쓰이 오장’의 죽음을 찬양한 이 시를 읽으며 문학사에 커다란 여백 하나를 남겨야 하는 일 때문에 참으로 슬프다.그러나 그의 재능이 아무리 준절하고 시심이 아름다워도 그를 ‘아름다운 시인’이라고찬양할 수는 없다. 이렇게 민족의 아픔을 등지고 입신양명의 길을 내달은 친일문인들의 반민족행위가 최근 공개됐다.민족문학작가회의(이사장 현기영)가 선배 문인들의 훼절과 반민족적 문학행각을 반성하는 참회와 함께 공개한 친일문학의 실체는 광복후반세기를 넘긴 지금에도 새삼 낯뜨겁다 친일단체 일진회의 수령을 지낸 송병준이 일개 일본군 참모에게 보낸 ‘삼가 재배하고 아뢴다.’는 편지글이나중추원 고문 출신인 윤치호의 ‘반도학도 출진독려문’은 오히려 가소롭다.

우리에게 신체시로 잘 알려진 최남선은 ‘보람있게 죽자’는 글을 통해 ‘오늘날 대동아인으로서 이 성전에 참가함은 대운 중의 대운임이 다시 의심없다.(중략)순정의 청년들아,공론을 집어치우고 대운에 들어서서 신선하게 역사적 임무를 담착하여 보세나.’라며,내놓고 조선인들의 참전을 독촉했다.소설가 김동인은 문인들에게 “스스로 내 손으로 총을 잡지 못하고 대포를 잡지 못하였다고 퇴축(退縮)치 말고 이 전쟁을 좌우할 중차대한 열쇠를 잡았노라는 자각과 긍지 아래 우리의무기인 문필을 가장 효과있게 이용할 것이다.”라는 궤변을 늘어놓았다.카프(KAPF)결성에도 참여한 팔봉 김기진은 ‘신전에 맹세하네 무엇부터 맹세할까/열가지 백가지를 한목 용서 못하리라/천황께 이 한몸 바쳐 뒷일 걱정 안하오.’라며 차마 못할 부끄러움까지 고백하는 용기를 보여주었다. 이런 친일 아첨 행각은 대구 출신 김문집이란 자의‘조선민족 발전적 해소론 서설’에서 극치를 이룬다.그는 “내선의 민족적일원화는 분수식으로 ‘A+c(조선민족)/A+b(대화민족)=1’로 표현된다.”며“1은 대화(大和)민족이나 조선민족이 아니라 양 민족의 우생학적 합명제,즉 한만(漢滿)남양(南洋)등의 외래 혈액을 약간 조미한 동근적(同根的)내선고대민족(內鮮古代民族)의 일대 재창조”라는 황당무계한 논리를 끌어대기까지 했다.그는 결국 일본에 귀화했다.

‘사나운 국경에도/험준한 산협에도/네가 날아가는 곳엔/꽃은 웃으리 잎은춤추리라’라고 한 모윤숙의 시가 장산곶매를 노래했더라면 얼마나 좋을까만은 그에게는 불의의 시대에 맞설 지조가 없었다.그래서 광강소년항공장(廣岡少年航空兵)에게란 제목의 이 몹쓸 글을 남긴 것이다.민족문학작가회의는 “선배문인들의 역사적·문학적 과오에 대해 후진들이 속죄하고 자성하는 ‘과거사에 대한 문단의 고해성사’”라고 이번의 친일작가 선정과 그에 따른 참회선언문 발표에 의미를 부여했다.

심재억기자

2002-08-16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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