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매일 창간98/마음 열고 하나로… 광장으로 나가자

대한매일 창간98/마음 열고 하나로… 광장으로 나가자

서동철 기자 기자
입력 2002-07-18 00:00
수정 2002-07-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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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팬지와 하얀 인포첸스,분홍 프리뮬러,진홍 할미꽃,보라빛 앵초….

서울시청 앞 광장에는 오늘도 온갖 꽃들이 저마다 경쟁하듯 아름다움을 뽐낸다.그 뜨거웠던 6월에도 꽃들은 피었지만 오늘은 더욱 생명력이 넘치는 듯하다.그 한달 사이 이곳이 ‘열린 광장’으로 탈바꿈한 것을 꽃들도 알고 있기나 한 것처럼….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말이 있다.한국에서 만든 것이기에 싼값을 받을수밖에 없다는 뜻이라고 한다.한국이란 나라가 싸구려일 동안 한국민의 자존심도 ‘디스카운트’될 수밖에 없었다.

광장이 닫혀 있는 동안 한국민의 마음도 닫혀 있었고,자존심도 꼬깃꼬깃 접혀 있었다.그러나 월드컵이 열리고 광장이 열린 한달 동안 우리는 달라졌다.

광장이 열려 있어야 하는 이유는 이것 한가지만으로도 족할 것이다.닫혀 있는 광장이 광장이 아니듯 닫힌 마음으로는 자존심을 되찾을 수 없다.

그것은 그러나 ‘한 사람의 힘’만으로는 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 국민은잘 안다.한 여론조사가 월드컵이 ‘한국인의 정체성’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파악한 결과도 그랬다.

거스 히딩크 축구대표팀 감독은 월드컵으로 한국민의 영웅이 됐다.그러나국민이 가장 감동적이고,가장 자랑스러웠다고 꼽은 것은 히딩크 감독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이었다.과거에는 몰랐던 ‘나 자신’‘우리 자신’의 참모습에 감동하고 자랑스러워했다.

물론 히딩크 감독이 남긴 것도 있다.사실 학연·지연을 배제하고 실력을 중시하는 리더십이란 한국인도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온 덕목이다.히딩크 감독은 그렇게 실천한 결과가 어떻다는 것을 비로소 확인시켜 주었다.

월드컵이 만들어낸 광장은 또 국민 사이의 친밀감과 신뢰감을 높이는 데 큰몫을 해냈다.데면데면하던 이웃과의 일체감도 한결 커졌다.

프란시스 후쿠야마라는 일본계 미국학자는 국민 사이의 친밀감과 신뢰감을‘사회적 자본’이라고 불렀다.그가 “한국은 바로 이런 사회적 자본이 부족하다.”고 비판했을 때 분하면서도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이런 상황이 이제 바뀌어 가고 있다.

그러나 후쿠야마의 입을 완전히 닫아 놓으려면 이런 친밀감과 신뢰감을 이웃돕기나 자원봉사 같은 사회적 차원으로 확산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

광장은 누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거리 응원 역시 누가 시킨 것이 아니었다.거리에서 체험한 공동체 의식은 서로가 국민의 잠재력에 신뢰를 갖게 했고,나라에 대한 깊은 애정을 꽃피웠다.“한국인이라는 사실이 지금처럼 자랑스러운 때가 없었다.”거나 “이제는 이민가겠다는말을 하지 않겠다.”는 고백도 그래서 나왔을 것이다.

이처럼 월드컵은 우리 국민이 그동안 잊고 지낸 광장의 의미를 다시 생각케했다.광장은 갈등과 투쟁의 사회적 분위기를 화해와 화합으로 보듬는다.학연과 지연 지상주의의 원인(遠因)인 콤플렉스도 자긍심으로 되살린다.

폐쇄성과 경직성,집단주의 같은 부정적인 문화도 개방성과 투명성·유연성처럼 긍정적인 문화로 바꾸어간다.

겉으로 엄숙과 금욕을 강요할수록 속으로는 썩어 들어가는 생활윤리도 행복·놀이·축제로 탈바꿈한다.양지로 나오면 모든 사물은 밝은 색을 띠기 마련이다.

태극기에 무조건적인경의를 바쳐야 했던 국수주의·쇼비니즘도 거리 응원을 거치면서 성숙한 애국주의·세계시민주의로 변모하고 있다.

한국민은 월드컵 축제를 거치면서 광장이 갖는 매력을 누구보다 확실하게 경험했다.역사를 되돌릴 수 없다는 말은 이런 때도 성립한다.광장의 매력을한번 경험한 사람은 절대로 폐쇄된 공간에 머무를 수 없다.

시청 광장의 팬지와 인포첸스,프리뮬러,할미꽃,앵초가 더욱 선명한 빛깔로 보이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광장을 바라보는 우리들 마음의 눈이 더욱 환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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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철기자 dcsuh@
2002-07-18 4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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