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관전기] 아! 붉은 물결…참 아름다웠다

[월드컵 관전기] 아! 붉은 물결…참 아름다웠다

전수천 기자 기자
입력 2002-06-19 00:00
수정 2002-06-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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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웠다.전국 방방곡곡에 출렁거린 붉은 물결 그리고 그 물결과 함께 일렁거린 우리 모두의 함성은 정말로 아름다웠다.6·13선거가 우리에게 스스로를 뒤돌아보게 하는 과제를 남겨준 뒤끝이었기에 월드컵 8강 진출을 확정지은 통쾌한 승리는 더욱 아름다웠다.

졸업생들의 작품심의 때문에 아침 일찍 학교에 가서 여덟 시간 동안 교수들과 학생들이 열띤 논쟁과 토론을 거쳐 심의를 마치자 자연스레 월드컵게임이 화제가 되었다.돌이켜보면 역사 이래 온 겨레가 참여하는 어제 같은 축제가 언제 있었으랴!심의 때문에 모두가 지쳐 있었지만 축구에 대한 열기로 피로도 잊은 채 누구의 입에선가 우리와 이탈리아 중 어디가 이기겠는지 내기를 제안했다.

여느 때 같으면 이런 제안에 귀기울일 교수들이 있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지만 모두가 약속이나 한 것처럼 찬성하고 나섰다.그 자리의 분위기 탓이었는지 모르지만 도박성 있는 내기 제안까지도 아름답게 느껴진 것은 객관성을 잃은 감정이었을까? 객관적인 의견은 이탈리아가 우세할 것이라고 하면서도 대부분의 교수들은 우리가 이기는 쪽에 걸었다.대부분이 우리가 이기는 쪽에 몰리자 그러면 몇 대 몇으로 이길 것인가 좀더 구체적으로 정하기로 하였다.나도 처음에는 이탈리아에 걸었다가 우리나라가 이기는 것으로 번복을 하고 평창동 가나화랑 옥외 스크린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와서 보니 가나화랑 광장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나와 응원을 시작하고 있었다.작업실에 있던 작업 조수와 아내를 불러내어 광장에 모인 인파와 함께 손바닥이 아플 정도로 응원을 했는데,아! 이게 웬일인가! 우리나라가 이긴다고 번복하고 변심한 나의 애국심이 적중한 것이 아닌가.

스크린 화면에 이 세상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는 너그러움과 감동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동안 우리는 서로에게 얼마나 많은 상처들을 주고 받으면서 살아왔는가!부정을 저질렀다고 상대방을 몰아붙이고 공격하면서 정작 본인은 부정을 하고도 의식 불감증에 걸려있는 일이며,자신과 이해관계가 있는 것이라면 상식 이하의 행동도 주저없이 저지르면서 어떤 양심의가책도 느끼지 못하는 것이며,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프로정신이나 책임감 부재가 비일비재하는 현상을 우리는 얼마나 보아 왔던가.

누구나가 알고 있는 사실을 다시 언급한다는 것이 새삼스럽기는 하지만 우리 국민의 우수성은 모두가 주지하고 있는 사실이다.우리 국민의 우수성에 비교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예를 들면 비엔날레가 열리는 베니스에 한국 관이 들어선 지 8년이다.그동안 2년 간격으로 4회 열린 비엔날레에서 우리나라는 필자를 포함해 강익중,이불 등 3명이 특별상을 수상하였으며 백남준을 포함하면 이러한 다수의 수상 사례는 베니스 비엔날레의 역사에서도 찾아 보기 힘든 일이다.

필자가 포함된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우수성을 말한다는 것이 계면쩍기는 하지만 어쨌든 우리는 그 어느 민족에도 뒤지지 않는 특별한 것을 가지고 있는 국민임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서울시청 앞에 55만,광화문에 55만,그리고 전국적으로는 400만의 인파가 옥외에서,전 국민이 어젯밤 이탈리아전에 하나되어 이제 8강을 일구어냈다.이와 같이 하나되는 마음이라면 무엇인들 못하고 무엇인들 포용하지 못하겠는가! 그동안의 불신으로 응어리진 스트레스를 우리는 가슴에 담고 살아왔는지도 모른다.어젯밤의 승리로 승화된 시청 앞 붉은 물결처럼 우리의 모습도 투명하고 아름답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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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수천/ 설치미술가
2002-06-19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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