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체비평] 9·11테러와 한국언론

[매체비평] 9·11테러와 한국언론

김창룡 기자 기자
입력 2001-12-25 00:00
수정 2001-12-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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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미국테러 참사'가 발생한 지 약3개월 만에 사실상 전쟁은 끝났다.유력 테러혐의자로 지목받고 있는 오사마 빈 라덴의 행방은 여전히 묘연하지만 아프가니스탄에서 무자비하게 자행되던 대량학살은 일단 멈추게 됐다.사상초유의 테러사건을 보도한 한국언론에 남긴 숙제는 무엇인가.

한국언론은 테러초기 미국에 편향된 보도로 일관했다.‘미국보다 더 미국적인 보도'라는 지적은 이후에도 크게 변하지않았다.국내 신문이나 방송 모두 현실을 지나치게 과장했고불필요한 긴장감을 조성했다.먼저 과장된 ‘호들갑’.미국의 뉴욕 타임스나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 등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사망자수 추정치 부분이다.조선일보는 ‘1만명 이상 대규모 인명피해,' 중앙일보는 ‘사상자 수만명 이를 듯,사망 1만여명 추정' 동아일보는 ‘무역센터서만 1만명 희생된 듯'한겨레도 ‘사망자 1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이라고 보도했다.다른 국내신문들도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1만명 사망자로 과장,추측했다.신문을 모방한 탓인지 한국방송에서도 수만명의 사망자 운운했다.지금은 독자나 시청자들은 이런 사실조차 잊어버렸지만 기록으로 엄연히 남아있다.한국언론이근거없이 현실을 과장한다는 점은 비판받아야 한다.

이뿐이 아니다.조선일보는 테러직후인 9월12일자 4면,31면,9월15일자 30면 등에 걸쳐 ‘세계3차대전' 발발 가능성을 집중적으로 부각시켰다.국내 어느 신문도 3차 대전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조선은 ‘3차대전 발발 가능성' 등의 추측성 과장보도로 불필요하게 사회적 불안감과 긴장감을 조성했다.결과적으로 사망자수는 실종자를 포함,약 3,500명으로 추정치 1만명에 약 3분의 1수준이다.그리고 3차대전은 애초부터 가능성이 없었다.한국언론은 도대체 뭘 원하는가.1만명이 죽고 3차대전이 일어나기를 주문하는 것인가.전쟁을 빨리 시작하지 않는다고 마치 조급증 환자처럼 설친 것이 역시 한국언론이다.

테러사건 직후 ‘일부 신문의 1면 제목들을 보면 ‘미,아프간 공격임박(조선,9.14)' ‘미,보복 공격임박'(중앙)‘부시,군사보복 준비지시'(동아) 등.다른 신문과 방송도 ‘미 보복공격 초읽기'라는 식으로 보복시점에 모든보도의 중심을 뒀다.그러나 정작 ‘초읽기’라는 보복은 한 주가 지나도 소식이 없었다.한겨레는 9월17일자에 ‘미공격 3∼4일 늦출 듯'이라고 보도했는데 이마저 잘못된 것이었다.미국이 실제로 포격에 나선 것은 한국언론이 흥분해서 ‘수일내'라고 하던 것과는 달리 거의 한달이 다 된 10월 7일이었다.

선정성 차원에서도 한국언론은 납치된 비행기가 무역센터에 충돌하는 장면을 지나치게 자주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반윤리적 보도태도를 보였다.미국방송이 자극적인 장면을 자제하고 충돌장면 방영을 극히 제한한 것과는 대조적이었다.특히국내신문과 방송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수 십층 빌딩에서 떨어지는 사람의 사진과 모습을 부각시켰다.비극을 생생하게전달하는 보도기능 이전에 언론은 이런 보도가 가져올 사회적 공포와 유가족의 인권침해 등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현실을 과장하고 불필요한 긴장감을 조성하는 일은 ‘正道 저널리즘'의 반역이다.



▲김창룡 인제대교수·신문방송학
2001-12-25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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