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포럼] 연기금 정책, 발상의 전환을

[대한포럼] 연기금 정책, 발상의 전환을

박건승 기자 기자
입력 2001-05-30 00:00
수정 2001-05-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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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맨해튼 월가의 뉴욕 증권거래소는 오전 9시30분 ‘오프닝 벨’을 울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대형 성조기가거래소 내부 곳곳에 휘날리는 가운데 열리는 개장식은 매우인상적이어서 미국 경제의 힘을 새삼 느낄 수 있다.CNN과 CNBC 등은 이 장면을 생중계해 지구촌 사람들이 개장 주가에촉각을 곤두세우게 한다.20여 곳의 매매 체결소(트레이드 포스트)는 주문을 내는 증권사 직원들로 오후 4까지 발 디딜틈조차 없다.지난 1년여간 정보기술(IT)산업의 침체 여파로뉴욕증시가 다소 불안정했지만 열기만은 여전히 뜨겁다.

미국 경기 침체와 첨단기술주의 약세에도 불구하고 뉴욕증시가 세계 자본시장의 심장부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것은 연기금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실제로 주식시장발달과 연기금의 운용방식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연기금의 주식투자 비중이 높은 미국·영국·네덜란드는 주식시장이 발달한 반면 연기금 주식투자를 제한하고 있는 독일·이탈리아는 상대적으로 증시가 낙후된 것이 이를 입증한다.

미국 연기금은 1980년대 이후 뮤추얼펀드와 함께 금융시장의 양대 기관투자가로 자리잡았다.1997년 25%에 불과하던 연기금의 주식투자 비율은 지난해 55%에 육박했다.이는 증시 침체기마다 연기금의 주식시장 확대 투입 여부를 놓고 논란을빚고 있는 우리나라 현실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우리가 먼저 미국 연기금정책에 주목하는 것은 연기금 운용 과정의 공정성과 투명성이다.현재 우리나라의 연금제도는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사학연금·군인연금 등이 있다.기금은 1961년 제정된 예산회계법에 따라 처음 도입된 뒤 현재 60개가 운영되고 있다.그러나 대부분 연기금이 목표수익률이나 허용위험도·투자대상 등 자산운용 정책이 명문화돼 있지 않은 상태다.따라서 연기금이자의적으로 운용되는 측면이 커 재정적 안정성이 취약한 편이다.반면에 미국은 국민연금에 해당하는 사회보장연금을 연방정부 산하 ‘기금 신탁위원회’가 엄격히 통제·관리하고있다는 점이 다르다.위원회는 재무·노동·보건복지부장관과 사회보장청장,민간위원 2명 등 모두 6명으로 구성된다.그래서 연기금의 자산변동 상황과 10년 단기 재정계획,75년 장기 재정계획,수입·지출 내역에 관한 연례 보고서를 만들어 매년 3월 의회에 제출한다.이러다 보니 사회보장연금 운용의공정성과 투명성에 대한 국민 신뢰도는 높을 수밖에 없다.

선진국이 연기금의 주식 투자시 철저한 감시·안전장치를마련하고 있는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미국은 이른바 ‘신중한 사람의 법칙’이란 책임기준을 갖고 있다.기관투자가가‘신중한 사람’으로서 소임을 다하지 못해 주식투자로 손실을 낼 경우 민사소송의 대상이 되기 일쑤다.연기금의 수익률이 낮거나 손실이 나도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 국내 풍토와 매우 대조적이다.

무엇보다 연기금을 통해 증시 활성화를 꾀하려면 선진국형기업연금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중장기적으로 검토할 만하다.

한국과 달리 미국은 기업연금의 비율이 매우 높아 전체 연기금의 60%를 웃돈다.그 중에서도 기업과 종업원이 출연금을분담한 뒤 종업원이 자기 책임 아래 주식이나 뮤추얼펀드에투자하는 기업연금이 절대적 비중을차지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우리나라도 공공자금 성격을 가진 국민연금의 주식시장 확대 투입 여부를 놓고 더이상 소모적 논쟁만 벌일 때가 아닌 것 같다.사적(私的) 연금시장을 활성화하는 방안을 강구해 연기금이 자연스럽게 주식시장에 흘러들게 해야 한다.국내 연기금 문제는 단기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구조적인 것이다.그런 만큼 정책당국은 연기금의 주식투자를 확대하기 이전에 연기금이 증시에 유입될 수 있는 제도와여건을 먼저 만드는 데 힘을 쏟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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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건승 논설위원 뉴욕에서 ksp@
2001-05-30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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