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교과서 왜곡과 한일교류

[기고] 교과서 왜곡과 한일교류

강성재 기자 기자
입력 2001-04-11 00:00
수정 2001-04-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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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한·일 월드컵 공동개최와 한국의 일본 대중문화개방에서 비롯된 한·일 양국의 우호적 분위기는 두 나라사이를 가로막던 지난 역사의 어두운 장막을 걷기에 충분한 ‘사건’이었다.혹 이러한 표현이 지나친 감상이라면월드컵 공동개최와 대중문화 개방을 통해 한·일 두 나라가 ‘매우 뜻깊은 진전’을 이루어냈다는 말로 바꿔도 무방하다.이는 화해와 우호를 위해 애쓰는 사람이면 누구나동감할 것이다.

그런데 그동안 조마조마하고 마음을 졸여온 불안이 현실로 나타났다.그것은 다름아닌 일본의 역사교과서 문제다.

모처럼 맞이한 화해 분위기를 초석삼아 21세기 한·일 관계에 새로운 진로를 모색해 나아가고자 열의를 품은 사람들에게 ‘교과서 왜곡’은 찬물을 끼얹는 사건이 아닐 수없다.특히 필자처럼 민간교류에 몸담은 사람에게는 그야말로 충격적인 일이다.

국제관계는 모름지기 서로를 이해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는 게 평소 지론이다.물론 자국의 이익을 포기하면서까지 상대방을 이해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다만 상대방과의 역사적 관계,현재 상황,미래 등을 염두에 두고 장기적인 계획을 바탕으로 선린외교를 해야 한다는 얘기다.유아독존 식의 외교관계를 성립할 수 있는 나라는 과거에 없었고,미래에도 없을 것이다.

일본의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전면에 나서기 전부터,그러니까 2002년 월드컵 공동개최와 대중문화개방으로 비롯된 해빙무드가 시작되기 전부터 한·일 양국에는 미묘한 흐름이 일어왔다.독도 영유권 분쟁,일본 정치인들의 망언,군대위안부 등의 과거사 문제….그럼에도 그것들이 전면에 드러나지 않은 것은 비단 해묵은 문제들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거기에는 모처럼 조성된 화해무드를 흐리지 말자는 양국사이 무언의 합의가 있었기 때문이다.필자는 바로 이런 부분이 현명한 정치요,외교라고 생각한다.하지만 이번 ‘역사교과서 문제’는 경우가 다르다.교과서란 말 그대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지침이요,그 나라의 정체성과도 연관된매우 중요한 사안이다.교과서,그것도 한참 감수성이 예민한 중학생들의 교과서에 주변국과의 선린외교에 방해가 되는 요소가 있다면 그건분명 잘못된 일이다.일본 국내에서 아무리 객관적 평가를 한다 해도 주변국들이 반발한다면거기엔 그럴 만한 까닭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시시콜콜 교과서 내용을 언급하지는 않겠다.다만‘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라는 단체와 그들을 후원하는 일부 정치가·학자·언론인들에게 묻고 싶다.“자학에 빠진 일본 교과서를 바로잡는 것”을 반대하는 많은일본인들은 그렇다면 누구인가? 일선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일본 교직원조합,야당인 민주당과 자유당 정치지도자들,또 많은 언론인과 지식인들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400년 전 일본으로 끌려온 조선 도공들의 비극적 삶과 그 후손들이 겪은 갈등을 엮은 연극이 일본의 심장부인 도쿄에서 한·일 합작으로,그것도 교과서 문제로 시끄러운 이때공연되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걸 쓴 이가 일본이 자랑하는작가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郞)란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일본에서 극우가 전부는 아니다.우리는 양식 있고 선린관계를 원하는 일본인들과 교류를 계속해야 한다.

강 성 재 한일문화교류센터 대표
2001-04-11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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