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광장] 장애인이 행복하면

[대한광장] 장애인이 행복하면

박은수 기자 기자
입력 2001-01-06 00:00
수정 2001-01-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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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바뀌면서,윤동주의 서시를 다시 떠올렸다.‘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비는 윤동주는 너무 원망스러웠다.세상 속에서 부대끼며 사는 나를 너무 힘들게 하기 때문이다.그러나 이어서 나오는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고,별을 노래하는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하는’윤동주 앞에서는 위로를 받을 수밖에 없는 세태이다.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다.

주변이 너무 어수선하고,추위가 더욱 춥게 느껴진다.그래,죽어 가는 사람이 있어,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그래,그 마음으로 그들을 사랑해야지.

일년전 겨울에 나는 급성간염으로 심하게 아팠다.봄이 되어 회복되면서 급선무는 식욕을 회복하는 일이었다.무엇이든 먹기 시작하면 일어설 것 같았다.우선 어려서 맛있게 먹던 초콜릿이나 과자부터 시작해 보고자 애썼다.

과자를 사러 휠체어를 끌고 문밖을 나섰다.골목골목을 돌아 대여섯군데 구멍가게를 찾았지만,결국 과자 1,000원어치 사는 데도 실패하고 말았다.무슨 이유에서인지 가게 출입구마다 턱이 있었던 것이다.세상은 뉴 밀레니엄이라고 외치고 있지만,이 땅에서는 휠체어에 앉으면 구멍가게조차 이용이 불가능하다.눈물을 흘리며 내 게으름을 반성했다.이곳 대구에서 10년 전에 교통봉사단을 만들고,노인도 장애인도 탈 수 있는 지하철을 만들자고 그렇게 소리쳐 뛰었지만 목발을 버리고 휠체어에 앉으니 어디 한 곳 갈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왜 지금 이 시점 우리 경제가 이리 어려운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른다.이기심의 정도가,제 한몸을 두고도 젊고 건강할 때만 생각하는 단견이 거듭되고 있으니 길게 볼 여유가 없다.경제란 모름지기 길게 볼 줄 알아야 제대로 되는 것이 아닌가.자기 한몸에서라도늙고 병들 때를 생각할 줄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장애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지금 멀쩡해도 늙고 병들면 장애인인 것이다.

나는 장애인을 움직이는 교과서라고 생각한다.또 어쩌면 우리를 테스트하기 위하여 천사가 변신하여 우리 곁에 와 있을지도 모른다고생각한다.지금 이 순간 고통받고 죽어 가는 이웃에게 저리도 냉정하고 나눔을 거부하는데,어느 신인들 축복을 베풀고 싶을까? 고통받는이웃에 대하여 연민을 못 느끼는 인간이,동강의 물고기는 살리자고외치며 나무를 보호하자고 외칠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에게 장애인과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지혜의 문이 열릴 때에 비로소 다른 문제들도 하나씩 풀려 나가는 것이 아닐까? 더구나 장애인이 누구인가.우리 사회를 만들려고 한 발 더 앞서 뛰다가 내 대신 다친 사람들 아닌가.우리 모두는 잠재적 장애인이 아니던가.또 누구나 유모차를 끌고 나가면 장애인이요,여성은 임신하면 장애인이다.젊고 건강한 남자도 무거운 짐을 들면 장애인이다.그들을 위해 거리와 출입문의 턱을 없애면 모두 다 편리한 것이다.그렇다.장애인에게 편리하면 모두에게 편리하다.

이런 정신에서 만든 아름다운 법률이 있다.장애인·노인·임산부등의 편의증진보장에 관한 법률이 바로 그것이다.너무나 감동적인 법이다.예를 들면 이러하다.장애인을 위하여 모든 보도는 미끄러지지 아니하는 재질로 평탄하게 마감하여야 한다.

어느 법률이 이보다 더 친절할 수 있으며 더 아름다울 수있을까.문제는 공무원조차 이런 법률이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너무 허다하다는 사실이다.금년 4월부터는 일정 규모 이상의 건축물이 이 법률의 규정을 지키지 아니하면 이행강제금 부과에 나서게 된다.

나는 우선 철도청 관계자에게 호소하고자 한다.민간항공이 장애인에 대하여 아무런 불편이 없도록 서비스를 제공하고 요금을 할인하는데 우리 철도는 너무 불친절하다.우선 새마을호 요금에는 할인이 없으며,계단이 너무 많은 반면에 휠체어리프터는 너무 느리고 위험하다.

우연히 철도청 직원들이 승용차로 열차객실까지 접근하는 것을 보았다.당신들은 계단을 이용해도 된다.장애인을 바로 그 승용차로 열차까지 모실 수 없겠는가.장애인이 행복하면 그 사회는 평화롭다.

박 은 수 변호사
2001-01-06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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